자신의 일보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원하는 菩薩
어서에「무고(無顧)의 악인도 역시 처자를 자애하니 보살계의 일분(一分)이니라」(어서121쪽)라고 있는데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자기의 처나 자식은 소중히 하며 귀엽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와 같이 타인을 자애하며 소중히 하는 마음, 또 타인을 위해서 노력을 아끼지 않는 생명 즉 자비의 마음 이타(利他=타의 생명을 이익되게 함)의 활동을 보살계라고 한다.
또 日蓮대성인은 「보살계라고 하는 것은 육도윤회(六道輪廻)의 범부속에 자신을 아끼지 않고 타인을 소중히하고 나쁜 일을 자기에게 돌리고 좋은 일은 타인에게 주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취의)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자기 일보다는 타인의 일을 소중히 생각하며 고생되는 일은 모두 자기가 맡고 좋은 일은 타인에게 주려고 하는 아름다운 생명의 활동을 보살계라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 반대되는 일이 많은 것이다. 이기적인 사람이 많은 만큼 이 세상에는 싸움이나 불행이 그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어느 책에「백혈구라든가 뇌세포라든가 하는 세포는 자기자신은 조금도 아픔을 못 느낀다. 그런데도 다른 세포의 고장은 곧 감지(感知)하여 아픈 곳에 달려가서 지령을 한다든가 하여 생명체를 지키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중에도 뇌세포나 백혈구와 같은 인간이 있다고 생각된다. 자신보다는 타인의 아픔을 느끼며 그 아픔과 쇠약을 치료하는 것으로 삶의 보람을 찾는 그러한 부류의 인간이다.
그러나 현재는 많은 사람이 신체조직의 아픔을 느끼는 세포쪽으로 되어버렸고, 더욱 나쁜 것은 암세포와 같은 인간이 증가하고 있지않나 하는 것이 염려된다」라고 있다.
자신의 통증이나 괴로움보다는 타인의 고통을 느껴서 치료해주고 싶다고 생각하여 행동하는 생명의 활동이 보살계이다. 타인의 고통을 없애주고 즐거움을 주려고 하는 자비의 마음이 없어지고 자신만 좋으면 된다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 현대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본래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해보려는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새끼고양이가 강물에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구조해 주려던 여자어린이가 물에 빠져 익사한 이야기가 있다. 불쌍한 거지를 보면 얼마만큼이라도 돈을 주고 싶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것도 보살계의 생명 활동인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 로망·롤랑이「만인(万人) 중에 제일 위대한 것은 만인을 위해서 고동(鼓動)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인간에게 있어서 목적임과 동시에 의무인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의 완전성과 타인의 행복인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산다고 하는 것이 최고로 아름답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