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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곤지의 유래

신점숙작가 2009. 6. 10. 15:18
 

 

 


 

잇 꽃은 일명 홍 화(紅化)라는 이름으로도 불리 우는 예부터 널리 알려진 홍색 염료로 유명한 식물이다.

 

잇 꽃은 오랜 옛적부터 재배되어 왔으며 이집트에서는 B.C 2,500년의 제 6왕조시대의 비문에 잇 꽃의 기록이 있을 정도이며 고대 이집트에서는 미이라를 싸매는 천을 잇 꽃으로 물들여서 사용했다 하며 B.C1300년경의 왕의 무덤에서도 잇 꽃의 식물조각이 발견되고 있어서 이를 증명하고 있다. 기원 원년경에는 염료 및 기름을 얻기 위한 유지식물로 널리 재배되었으며, 인도에서도 기원전부터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에는 한(漢)나라 때 (B.C 2세기경) 장 건(張騫)이 서역(이란)에서 가져갔다고 전해지며 우리나라에서 들어온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고구려 때 (6세기)승려 담징(曇徵)이 일본으로 가졌다고 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중국에서 들어와 고구려 초기에 흔히 재배되었던 식물임을 알 수 있다.

 

유럽에는 중세에 전파되었고 미국에는 스페인 사람이 멕시코를 거쳐 19세기 초에 염료작물로 도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북미, 남미, 인도, 중국, 유럽남부, 일본, 동남아 등에서 염료 및 유료작물(油料作物)로 대량재배되고 있다.

 

잇 꽃은 학명을 Carthamus tinctorius 하는데 Carthamus 아랍어의 Korthom 즉, "염색한다"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며 종명의 thnctorius 도 "염색용의"라는 뜻이라 하니 이 식물이 고대에 염료로서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했던 가를 말해주고 있다.

 

영명의 Safflower는 사프란(Saffron)과 유사해서 사프란 대용으로 쓰이는 염료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dyer`s dsffron 이라는 이름도 있는데 역시 샤프란 염료라는 뜻이다.

 

잇 꽃에는 carthamin 이라는 물에 녹지 않는 적색 소(赤色素)와 safloryellow 라는 물에 잘 녹는 황색 소(黃色訴)가 있어서 염료로 이용할 때는 꽃을 물에 담그어 황색 소를 제거한 후 묽은 색소만을 이용하는 게 이것을 연지(燕脂)라 한다.

 

연지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옛날은(殷)나라 주 왕(紂王)의 왕비였던 요염하고 음탕하며 독 부로 유명한 달기가 연(燕)나라에서 가져다가 만들었기 때문에 "연지"라 했다 하며 진한 화장은 달기를 연상하여 천박하게 대접했다고 전한다.

 

옛날 중궁의 한나라 때는 천자제후의 궁녀(宮女)들의 월경이 있을 때는 잇 꽃에서 만들어진 붉은 연지를 얼굴에 묻혀서 월경 중 임을 표시했다 하며 나중에는 월경의 유무에 상관없이 화장용으로 연지를 볼, 입술, 손톱 등에 칠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는 결혼식 때 새색시의 얼굴에 연지 곤지를 찍는 풍습이 있는데 이것은 붉은 색이 악귀를 물리친다는 주술적인 의미가 부여되어 있는 화장 술의 하나로서 결혼식의 신성함을 지키기 위해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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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燕脂)는 볼과 입술에 붉게 칠하는 전래의 화장품이다.

연지를 볼이 아닌 이마에 동그랗게 찍어바르면 그것이 곤지가 된다.   연지곤지에 대한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說)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연지곤지가 원래 생리중이란 표시였다는 설이다.

 

여염집 아녀자들이 그런 표시를 할 필요는 없겠고, 임금의 여자인 궁녀들이 ‘오늘은 임금님을 모시지 못합니다’ 라는 표시로 뺨에 연지를 발랐다는 것이다.

 

 지엄하신 임금님께 감히 “죄송하지만 저 오늘 생리중이거든요”라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인지라, 임금이 척 보면 알 수 있도록 얼굴에 생리를 연상시키는 붉은 색으로 칠했던 것인데, 그것이 여염으로 퍼져 유행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럴싸한 설이긴 하지만 생리의 표시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성들이 연지 화장을 했다는 것은 잘 믿기지 않는다.

 

또한 연지곤지를 단순히 화장하는 의미로 해석함에도 다소 무리가 있는데,  그 이유는, 화장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전통적인 취향과는 어울리지 않게 색이 너무 진하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우리 민족은 정통적으로 희고 깨끗한 얼굴을 선호했다. 송나라 사람이 쓴 [고려도경]이라는 책을 보면, 고려의 귀부인들은 연지 바르기를 즐겨하지 않고 그저 분을 바르는 정도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얼굴에 그림을 그리는 짙은 메이크업이 아니라 엷은 색조의 은은한 화장을 좋아했던 것이다. 짙은 화장에 대해서는 야용(冶容), 풀어 말하면, 일부러 예쁘게 치장한다는 의미라 하여 저항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연지를 찍는 특별한 화장은 젊음과 처녀성을 표현해야 할 특별한 경우, 즉 결혼식 같은 경우에만 했다.

 

연지 화장은 신라 때부터 시작했다. 즉 연지는 신라인의 발명품인 셈이다.

연지곤지 찍기는 색깔도 너무 선명하고 모양도 두드러진다. 그렇다면 왜 이런 화장을 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TV에서 방송되는 사극을 통해 전통 결혼식 장면에서 신부가 연지곤지를 찍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장면을 많이 보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옛 풍속에서 재혼하는 여성은 볼과 이마에 연지를 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지곤지 화장의 유래는 초혼과 재혼의 차이에서 찾는 것이 더 옳을 듯 싶다. 그렇다면 연지곤지 화장은 숫처녀임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나이 어린 처녀들은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아도 뺨에 붉은기가 돈다. 조금만 부끄러워도 뺨이 발그레해진다, 그러므로 발그레한 뺨은 젊음, 싱싱함, 처녀성의 상징이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뺨과 이마에 연지를 발랐을지도 모른다.

 

 옛 기록을 찾아보면 연지를 만드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자연 염료를 이용하여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화학적 작업을 거쳐 만드는 것이다.

자연 염료로는 잇꽃을 썼다. 잇꽃은 1~2년생의 국화과 꽃인데 원래는 황색이며 약간 붉은빛이 돈다. 이 잇꽃을 찧어서 물에 담그면 황색색소는 물에 녹고 붉은색 색소만 남는데, 이것을 약품 처리하면 붉은색 연지가 나온다. 반면 화학적 작업을 거쳐 만든 것은 주사 연지다.

 

수은을 주성분으로 하는 주사라는 광물을 갈라서 계란 노른자 등에 석어 솥에다 끓여서 만든다. 주사 연지는 잇꽃 연지보다 색깔도 붉고 윤택이 났다. 그러나 요즘 화장품 과용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처럼 주사 연지도 오래 사용하면 화장독이 생겼다. 그래서 민간보다는 궁중의 궁녀나 기생들이 주사 연지를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연지곤지에 대한 說중에 잇꽃이니 홍화니 하는 내용은 엄밀하게 말하면, 연지곤지를 만드는 방법을 말하는 것일 뿐, 연지곤지가 왜 생겨났는지에 대한 유래라고 볼 수는 없다.

 

說이란 ,말 그대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말한다.

특히 說이란, 그 자체가 “이것이다“ 라고 명확한 답을 말하기는 다소 무리가 있는데, 그 이유는, 설의 특징 중 하나가 구전문학(口傳文學)이라는 맥락에서 해석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구전(口傳)이라는 뜻 자체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 오다가 어느 시기에 문자로 기록되어졌기 때문에, 시대가 흐르면서 내용상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유래담이란, 당대의 정서나 문화, 사회상을 토대로 가장 그럴싸한 의미를 찾는 것이지, 수학이나 과학적으로 일정한 답을 요하는 절대적인 시선은 다소 무리가 있다는 점을 참조하여야 한다.

 (김경훈의 『뜻밖의 한국사』라는 책을 참조로 하여

      由來나 說에 대한 의미는 개인적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