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삼월에 내리는 눈 - 수필
수필
춘삼월에 내리는 눈 / 신점숙
삼월, 봄을 기다리는 대지 위로 뜻밖의 눈이 내린다. 벚꽃이 필 준비를 하던 가지 위에, 새순이 막 돋아나려는 들녘 위에 하얀 눈송이가 살포시 내려앉는다. 계절이 변하는 길목에서 봄과 겨울이 마주치는 순간, 그 경계에 서서 나는 한참 동안 눈을 바라본다.
봄눈은 가볍고 조용하다. 소리 없이 내려와 세상을 덮지만, 머무는 시간이 길지 않다. 땅에 닿자마자 이내 녹아버리는 그 덧없음이 오히려 깊은 인상을 남긴다. 두꺼운 외투를 벗고 가벼운 옷을 꺼내 입던 사람들은 다시금 몸을 움츠리고, 만물이 소생할 채비를 하던 자연도 잠시 숨을 죽인다. 하지만 그 순간마저도 아름답다. 겨울의 마지막 흔적과 봄의 첫 걸음이 뒤섞이는 이 기묘한 조화 속에서, 나는 삶의 섭리를 배운다.
기다린다고만 오지 않는 것이 봄이고, 떠난다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 겨울이다. 세상의 모든 변화는 이렇게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뒤섞이고 어우러지며 완성된다. 삼월의 눈은 마치 겨울이 봄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제 떠날 테니, 네가 세상을 환히 밝히렴." 겨울의 목소리를 들은 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이런 삼월의 눈을 좋아한다. 길 위를 걸으며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의 소리를 듣고, 녹아내리는 눈이 빗물처럼 흐르는 모습을 바라본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어딘가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이 눈이 곧 사라질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일까. 언젠가 우리 인생도 삼월의 눈처럼 한 순간 머물다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사라진다고 해서 그 흔적이 완전히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봄눈이 스며든 땅에서 새로운 생명이 움트듯, 우리의 발자취 또한 누군가의 마음속에 남아 작은 온기가 될 것이다.
삼월의 눈을 보며, 나는 희망을 본다. 비록 금방 녹아 사라질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는 눈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빛나는 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