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가 신점숙작가
진달래...웃음이 보약이다.. 본문
어떤 행사의 단체 사진을 보면 모두 꽉 다문 입술에 근엄한 표정으로 자신의 신분이나 직위를, 체면을 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직업에 따라서 상당히 많은 차이를 느낄 수 있지만 대 다수는 과묵한 표정이 사진 찍을 때의 자신의 모습으로 나타나 있을 것이다.
배우나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외에는 모두가 그렇듯이 카메라 앞에 서서 어색한 웃음을, 미소를 짓는다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 초등학교 때 운동선수로 조그마한 동네 를 벗어나 읍내, 군에, 도에 이렇게 다니면서 세상이 이렇게 넓구나 하고 느끼면서..
시상대에 올라 뻣뻣하게 상을 받던 나 자신의 사진을 본적이 있다.
웃으면 어떨까 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 하면서 사진의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난 끼가 있는 아이로 전략하게 되고 끈임없이 왜? 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모든게 궁금하고 궁금한건 해 봐야만 되는 여성으로서는 참으로 위험한 모험을 하게 되었다.
웃지 않는 내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면서 고민을 했다. 후에 어른이 되어서 내게 어울리는 머리 스타일은 어떤것일까? 를 아무리 그림으로 그려 봐도 생기 없고 볼품 없는 나약하게만 보여지는 흑백사진일 뿐이였다.
그 이후로 그림을 그릴 때도 옷을 입을 때도 가능하면 삼원색을 벗어나지 않는 색을 선택을 하면서 점차적으로 주위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그러한 노력에도 아주 많은 시간들을 어떤 장소에 여려명이 함께 가면 "나" 라는 존재는 왔다 갔는지 아무도 모를 정도 였다.
하지만 긴시간동안 노력한 결과 지금은 미소의 여왕, 또는 진달래 하면 늘 잘 웃는사람 밝은옷 입고 다니는 조금 특이한 사람
으로 보여졌다.
내가 웃지 않는 사진을 찿아보기란 참 힘들정도로 많이 웃고 긍정적으로 매사를 바라보면서 건강을 관리 해 왔다.
유쾌하게 큰소리 내어 웃지는 않지만 늘 웃을려고 노력하고 행복하다고 마음으로 크게 소리 치면서 살아간다.
웃을 일이 없으면 활짝 웃고 있는 내 사진을 들여다 보면서 다시 웃음을 만들어 낸다.
50후반에 들어와 있는 나는 지금도 내 나이가 얼마나 되었는지 잊고 산다.
어쩌다 서류에 나이를 적어야 하는 일이 있을 때 숫자가 높음에 나도 놀라곤 한다. 30대 초반에 백혈병이라는 홍역을 치르기도 했지만 여전히 난 삼원색에 가까운 색감의 옷들로 옷장을 채워 넣고 있다.
얼마나 웃고 다녔는지 함께 살고 있는 가족들 까지도 심각하게 내병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난 죽을 지경인데도..
웃음이 얼마나 큰 보약인지 난 내 몸으로 체득했다. 긍정의 힘 웃음의 힘이 내 운명을 바꿔 놓고 있다.
지금 난 양쪽 무릅의 연골뼈가 없다, 오른쪽은 초등학교때 파열된 연골을 20대 후반에 수술로 제거를하고..
왼쪽은 수년전 교통사고후 X-레이 촬영으로 없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한번도 왜? 내가 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싸이클에. 등산에. 하고 싶은 운동은 다 하고 다니고 싶은 곳 다 다니는 내가 말 하지 않으면 아무도 내양쪽 무릅연골뼈가 없는사람인지 백혈병을 앓았던 사람인지 모른다.
난 늘 밝고 명랑하게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시간을 아까워 하면 배울려고 부단히 노력 하고 있다.
지금의 나의 모습에 내가 하는일에 나와 눈이 마주치는사람에게 늘 웃음으로 대할려고 한다.
난 지금 무척이나 행복하다..
난 오늘도 카메라 앞에 서면 바로 미소가 지어진다. 쉽지만은 않았다..바로 인간혁명을 했던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과 같은 나의 앞길에 내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도 등불을 비춰주지 않기 때문에 인간 혁명을 했던 것이다.
난 새로운 나 자신을 만들기 위해서 자신의 나태함, 게으름과 끊임없이 싸우고 투쟁을 했던 것이다.
난 행복자여야 하기 때문에, 내 인생은 나의 것이기 때문에.. 소중하게 가꾸고 다듬어서 지금보다 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시간으로 부터 자유를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난 오늘도 혁명의 깃발을 미소 속에 감추고 치켜들고 달린다.
진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