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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넘버2' 자리 굳히나 금융위기 속 목소리 높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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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넘버2' 자리 굳히나 금융위기 속 목소리 높여

신점숙작가 2009. 2. 9. 12:31

국제정치, 외교, 경제무대에서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대안세력으로 유럽연합(EU)이 첫 손에 꼽힌다.

미국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 아래 무시됐던 환경문제, 인권문제와 같은 핵심이슈는 EU가 자신 있게 주도할 수 있는 분야이며, 다극화의 조류 속에 EU의 입지는 한층 더 탄탄해질 전망이다.

20 세기 후반 국제화와 지역블록화가 동시에 전개되는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 두드러지면서 국제정치, 외교, 경제는 미국과 유럽 외에 한국.중국.일본, 즉 동아시아 3개 축을 중심으로 움직이게 됐다. 이 가운데 동아시아의 경우 경제적으로는 한국과 중국이 아직도 신흥국으로 분류되고 있고 정치, 사회적으로는 중국이 여전히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지 못하는 현실적 한계를 안고 있다. 따라서 국제정치, 외교, 경제무대에서 미국의 일방주의를 견제하고 넘버 2로 자리를 굳힐 수 있는 대안세력으로 유럽, 구체적으로 유럽연합(EU)이 자연스럽게 첫 손으로 꼽힌다.
특히 지난 8년간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 아래 무시됐던 지구온난화 등 환경문제, 인권문제와 같은 핵심이슈는 EU가 자신 있게 주도할 수 있는 분야로 다극화 조류 속에 EU의 입지는 한층 더 탄탄해질 전망이다.

G20 정상회의 주도
   미국 리먼브러더스 파산보호 신청으로 촉발된 금융위기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혼돈에 빠졌을 당시 EU 이사회 순회의장국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과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세계 금융시스템의 재편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른바 ‘신(新)브레턴우즈’ 논의에 불을 댕긴 사르코지 대통령과 브라운 총리는 결국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미온적인 자세에 아랑곳하지 않고 G-20 금융정상회의 소집을 관철했다. 비록 2008년 11월 15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G-20 금융정상회의가 급조된 모임으로 구체적 실행방안까지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자리였지만 20개국 정상이 한데 모여 머리를 맞댔다는 것만으로 큰 의미가 있었으며, 금융위기가 진정국면으로 접어드는 데 모멘텀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워싱턴 D.C. 정상회의에서 EU를 대표한 사르코지 대통령은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한 국제 금융시스템의 재편을 촉구했고 말로만 끝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갖고 실질적 성과를 낼 2차 정상회의 개최를 촉구, 이를 관철했다.

EU의 소프트 파워
   금융위기가 도래하기 직전인 2008년 여름 지구촌을 충격에 몰아넣었던 그루지야 전쟁에서도 EU는 양 당사자인 그루지야와 러시아 사이의 휴전을 이끌어내는 등 높이 평가받을 만한 외교력을 발휘했다. 옛 적성국인 러시아와의 미묘한 관계, 그루지야 사카슈빌리 정권과의 유착 때문에 미국이 이 무력분쟁에 효과적으로 개입하지 못하고 있을 때 사르코지 대통령은 EU 대표로서 중재에 나서 결국 카프카스에 포성을 멈추게 하는 협상을 성사시켰다. 카프카스의 불안이 당장 회원국의 안위는 물론 유럽 대륙 전체의 불안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EU는 이해당사자로서 문제해결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소프트 파워를 중시하는 외교노선을 십분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핵심이슈에 주도권
   21세기 첫 10년을 넘기면서 당면한 국제적 핵심이슈는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친환경 정책의 시행, 인권 증진, 그리고 무력이 아닌 대화를 통한 분쟁해결이라고 하겠다. 지난 8년 간의 부시 행정부는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하는 한편, 관타나모 수용소를 운영하면서 적법한 절차를 무시한 채 단지 테러용의자라는 명목으로 불법 구금하는 등 환경과 인권이라는 핵심이슈를 외면한 실패한 정책의 표상이었다. 반면 EU는 오는 2020년까지 이산화탄소(CO2) 배출량과 에너지 사용량을 1990년 대비 20% 줄이고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은 20%로 끌어올리는 소위 ‘20-20-20 환경정책’을 채택, 지구온난화를 막고자 지구상에서 가장 엄격한 환경정책을 펼 태세다. 인권문제와 관련해서도 EU는 미국의 관타나모 수용소 폐지를 줄기차게 촉구하고 중국과의 외교적, 경제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순방을 환대하며 중국 인권운동가에게 ‘사하로프 인권상’을 수여하는 등 지구촌 인권 지킴이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EU는 이밖에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종식을 위한 중동평화 협상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이란 핵개발 의혹 문제도 힘으로 해결하려는 미국에 맞서 어떻게든 대화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강력한 리더십 부재
   2008년 하반기 그루지야 전쟁과 금융위기 속에서 EU가 괄목할 만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카리스마와 강한 추진력을 겸비한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마침 이사회 순회의장국 대표였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EU 시스템상 이사회 순회의장국은 6개월마다 회원국이 돌아가면서 맡게 되고 2009년 1월 1일부터는 체코가 이 역할을 떠안게 된다. 신생 회원국이자 정치.경제적으로 EU 내에서 약소국인 체코가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사르코지 대통령은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27개 회원국 사이의 이견과 갈등을 조율하고 대외적으로 국제무대에서 EU를 대표해 미국 등과 기싸움을 벌일 수 있는 리더십의 필요성이 절실한 가운데 이를 담보할 리스본 조약의 발효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따라서 EU가 국제정치, 외교, 경제무대에서 미국에 맞설 넘버 2의 자리를 굳히려면 2009년 유럽의회 선거와 집행위원회 재구성 등 중요한 정치 일정의 와중에 리스본 조약을 반드시 발효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영묵 브뤼셀 특파원 | econo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