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가 신점숙작가
아버지 딸로 태어난 것을 감사드립니다. 본문
아버지! 무섭다고 느끼면서도 깊은 사랑에 감사하며 자랑스러웠던 아버지.. 94세로 이 세상에서 저 먼 나라로 가신 아버지! 험난하고 힘든 내 인생길에 힘을 주셨던 아버지..그립기만 하다. 갑자기 아버지가 그리워 우리들과 영영 이별을 하고 떠나시던 날 혼자 보기 위해 휴대폰으로 담았던 아버지의 모습을 올려 본다. 지혜롭고 슬기로우시면 유머스러우셨던 내 아버지! 멀리에 계시지만 사진을 보면서도 힘을 얻는다. 초등학교 때 누구나 다 가는 소풍 한번 제대로 못 가봤다. 아마도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나셔서 즐거운 자리에서 함께 맛나게 먹을 소풍 도시락을 챙겨 줄 수 없어서 귀하고 사랑스런 딸이 상처 받을 까봐 더 엄하게 다른 이야기로 보내 주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럴 때 아버지는 얼마나 가슴이 메여 지셨을까 마음을 헤아리며 원망보다는 나 혼자서 즐거움을, 당위성을 찾아 볼려고 부단히도 자신을 달랬었다. 어린 나이에 정신 세계는 늘 아버지 눈치를 보면서 어른 스러운 행동을 해야 했던 것이 매사에 조심스럽고 진지하게 관망을 하게 되는, 어른들은 차분해서 좋다고 하지만 난 우유부단에 소극적인 성격에 내 속에 내재하고 있는 분출되지 못한 끼를 안으로 삭이느라 새초롬하게 포장 하느라 몹시 힘들었다. 책을 좋아해서 교장실 청소하고 보상으로 도서실에서 마음껏 책을 읽다가 학교에서 종종 늦어질때 영락없이 아버지로부터 심한 야단을 맞는다. 빨리 집에와서 집안일 해야 하는데... 나도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모든 꿈을 마음속에 깊이 묻어두고 지내야만 했던 초등학교.. 운동을 좋아고, 잘 해서 면대표,군대표,도대표로 친구들 수업할 때 체육선생님이나 교감선생님을 따라 원정경기를 다니며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다. 새로운 세상에서 보여지는것 들은 펼치지 못하고 있는 꿈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일본의 해질녁의 후지산을 그려서 전교에서 주목을 받기도 하고. 조용하지만 운동 선수로서 기량을 발휘하고 싶은 욕구를 아버지가 눈치채고 집안에 철봉과 트랙을 만들어 주어 어린 내가 마음껏 트레이닝을 할 수 있도록 해주셨던것! 엄하지만 말씀은 없으셨지만 딸이 원하는게 무언지 아시고 소리 없이 실천 할 수 있도록 뒤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아버지.. 초등학교 3학년때 술 을 가르쳐 주셨던 아버지! 성인이 되었을 때 사업상 만나게 되는 남성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술 자리에서 어떤 술 부터 먹어야 되는지..좌석은 어느곳에 않아야 되는지등.. 청년이 되었을 때 자전거로 이동 할 일이 있을 거라고 초등학교 때 어려운 살림에도 자전거를 가르쳐 주셨던 아버지! 중학교에서 선수로 활동하고 있을 때 늘 다 헤진 운동화를 신고 다녔던 기억이 있는데.. 나보다 생활이 어려운 친구(같은 팀)도 늘 깨끗한 새 운동화를 신고 다니느것을 봤는데.. 알고 보니 아버지가 뒤에서 살펴주시면서 사주었다는.. 그 때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왜!~ 나는 안해 주고 친구들을 돌보고 계셨을 까..? 방과후 운동 연습을 하다가 군것질 할것이 없을 때 빵 하나에 달걀 삶은 것 이 최고의 간식이였다. 먹을 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보면 아버지가 달걀에 빵을 선수들의 간식으로 두고 가셨다는 후담을 듣게 된다. 엄하고 무서웠지만 딸의 생명에 내재하고 있는 끼를! 재능을 키워 주실 려고 음지에서 살펴 주셨다. 중학교 때는 여름방학에 자전거로 문경군을 일주를 했었다. 일주일 동안.. 옛날 시골 짐자전거로..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학교 선생님께 부탁을 해서 선생님과 나,그리고 남학생 몇명과 함께 말이다. 정말 힘들었다. 없는 산위의 길도 다녀야하고 자전거가 너무 커서 감당하기 힘든데 오르막 내리막.. 사정 없이 다녀야 했었다. 그래서 어릴 때 자전거를 가르쳐 주셨던 것 같다. 동네 어른들은 상투를 하고 갓을 쓰고 있는 두메산골에서 다리를 번쩍 번쩍 들어 가면 자전거 탄다고 동네 어른들께 걱정도 많이 들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것 아량곳 하지 않고 자너거를 가르쳐 주셨는데 제대로 탈 수 있도록 타기 까지 시골 자전거 3대나 망가뜨렸던 기억이 있다. 배우면서 동네 어귀의 논에 곤두박질 쳐서 논농사를 다 망쳐 놓기도 하고.. 그래도 아버지는 배우는데 기 죽지 않도록 모든 뒷 처리를 해주셨다. 이랬든 아버지가 2012년에 94세를 다 넘기지 못하고 우리들 곁을 떠나 가셨다. 아직도 나는 배워야 할게 너무 많은데.. 아버지의 사랑이 필요한데..강한것 같이 아무렇지도 않은것 같이 살고 있지만 힘들땐 어머니와 아버지가 너무나도 그립다. 마음 놓고 펑펑 울어 보고 어리광도 부리고 싶다. 늘 단정하고 가지런한 모습으로 이미지 관리를 훈계하셨던 아버지... 오늘은 너무나 보고싶어 사진을 올려 봅니다. 아름다운 꽃 속에 감싸여 아무 말씀이 없으신 아버지.. 아버지 가시는 길에 조의릎 표해 주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름다운 꽃이 있어도 맛있는 밤이 있어도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꽂감도 달콤하고 맛있는데..
아버지가 계시는 고향집에 가는길에 맛있는 사과 과수원이 있다. 돌아 올때는 한바구니 맛있는 사과를 사주시고 그 중에 아주 잘 익은 사과 하나를 주인장 몰래 슬쩍 해서 주머니에 몰래 넣으주시기도 하시던 아버지! 하지만 과수웑인도 모른척 따뜻한 미소로 보아 주셨던 기억들.. 엄하셨지만 참 재미있게 즐거움을 남겨 주셨던 울 아버지.. 무심히 타오르는 촛불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원을 하건만 돌아 오시지 못하시는아버지.. 약주와 담배를 즐겨 하셨던 아버지..저 향이 맵지는 않으실까..? 살아 생전에 잘 해 드리지 못한것이 못내 가슴이 메여진다. 이제 사그라들고 있는 저 향의 불기운 같은 아버지..
혼백만이 내 곁에서 말씀도 없이 지켜 보시고 계시는게 안타까울 뿐이다. 아주 당당 하시고 지혜로우셨던 아버지! 엄하셨지만 깊은 사랑을 표현 해 주셨던 아버지! 먼 나라에서 아니 가까운 내 곁에서 새로운 인연으로 만나고 싶습니다. 화사한 꽃 속에서 아름답고 멋진 분으로 편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아버지의 하나 밖에 없는 딸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가셨지만 가시는 길에 마음으로 길 열어 주신 많은 분들과 함께 깊이 깊이 감사드리며 사랑합니다. 아버지!~
새로운 생명으로 가까이에서 다시 만나요. 아버지! 다시 만나면 잘 해 드리겠습니다. 다시 만날 수 있도록 기원 드리겠습니다. 울 아버지! 신 희 영 함자를 잊지 않고 깊이 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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