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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가 신점숙작가

지구촌아프리카 대륙 최남단 케이프포인트 등대, 희망곶 본문

▷♣[희정의여행이야기]/남미 * 아프리카

지구촌아프리카 대륙 최남단 케이프포인트 등대, 희망곶

신점숙작가 2015. 2. 26. 14:41

 

2014년 4월 8일 지구의 최남단 육지,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의 아굴라스곶의 북서쪽 160km 지점에 있는, 케이프타운에 가까운 케이프반도의 맨 끝에 있는 케이프 포인트 등대 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아침 일찍 부터 가슴은 설레인다. 가는 도중에 넓고 푸른 하늘 전체를 뒤덥는 연기가 치솟는다. 너무나 많이 움직여서 구름인 줄 알았다.. 케이프포인트 등대 수십km 전방의 국립공원에 불이 났다. 엄청난 기세로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불길을 진압을 할 생각을 못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붙지 않도록 맞불을 놓고 있다. 광활한 면적이라 감히 불을 진압한다는 것은 꿈인것 같았다. 오전 8시경 부터 타오르기 시작한 불은 저녁 11시가 넘도록 무서운 기세로 타올랐다. 불길이 어찌나 거대한지 몇 km에 밖에서도 열기가 차안에 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휘기종 동식물들이 불에 다 타버려 멸종이 되기도 했다. 몇년 전에  지금 불이 났던 인근의 국립공원에 불이 나서 휘기종들이 멸종되는 위기가 있었다는데 ..건조해서? 자연발화 된것 일까?.

지구촌을 투어 하면서 이런 저런 일들이 많이 있지만 불길에 아무것도 남지 않고 재로 날아 가버리는 모습을 목격하고 나면 인간의 나약함이 어떤 것인지를 볼 수 있다. 그냥 맥 놓고 손도 써보지 못하고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  인간들이 대 자연 앞에  아옹 다옹하며 자웅을 겨루는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나마 걸음이 빠른 동물들은 식구들을 데리고 황급한 발걸음 으로 도망을 치는 모습을 보았지만 느린 거북이들은 모두 멸종이 된것 같다.

 

희망곶은  여행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아프리카 최남단을 만나 본다는 것은 가슴 셀레이게 하는것이다.1488년 포르투갈의 항해자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발견하였으며, 당시에는 '폭풍의 곶(Cape of Storms)'으로 불렸다. 그후 1497년 V.d.가마가 이 곶을 통과하여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한 데서 연유하여, 포르투갈 왕 주앙 2세가 카부 다 보아 에스페란사(희망의 곶)라고 개칭하였다. 룩 아웃 포인트(Look out Point)라는 등대가 있는 전망대로 가면, 반도의 최남단인 케이프포인트(Cape Point)가 내려다 보인다.

최남단의 케이프포인트 등대에 다녀 간다는 흔적도 남겨보고 사진도 담으면서 대서양과 인도양의 넓은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기대는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구름으로 볼 수가 없었다.

 

바다위에  새하얀 솜들로 융단을 깔아 놓은듯 빠르게 이동하며 시야를 가려서 안타갑지만 넓은 바다는 희망 곶의 케이프포인트에서는 잠깐씩 부분적으로 보여주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2001년 현재 희망봉 일대는 관광지로서 곶의 첨단까지 관광용 자동차도로가 통한다. 반도의 남단부는 자연보호지구(1939)로 지정되어 있으며, 비비(희망봉 본문 이미지 1)를 비롯하여 많은 동식물이 보호되고 있다.

케이프포인트 등대에서 사진을 찍고내려와 1km정도 이동을 해서  희망곶에서 남단을 실감하는 표지석을 앞에 두고 바다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담으면서 한입 가득 느껴지는 생미역 향에 취해본다. 넘쳐나는 생미역의 크기도 상상을 초월한다.해안 전역에 검푸른 미역이 파도로 일렁일 때마다 밀려 나오는 광경은 그냥 걷어다 먹으면 될 미역이 지천으로 늘려있다.

 

희망곶이란 이름이 지어진 유례는 다음과 같다.포르투갈 인들은 1471년 적도를 넘어 현재의 가나 즉 황금 해안을 황금 거래와 탐험의 기지로 삼았다. 이후 서해안을 남하하여 1484년에는 자이르(콩고) 하구를 발견하여 상륙하였다. 1487년에 3개의 석주를 배에 싣고 포르투갈을 출발한 디아스(Bartholomeu Diaz : 1450-1500년)는 나미브 사막 남단에 있는 오렌지 강 하구에 도달하여 그 곳에 최초의 석주를 세웠다. 그 후 남하한 곳에서 격렬한 폭풍우에 휘말려 약 2주일 동안 육지를 볼 수 없었다. 폭풍우가 가라앉았을 무렵에 이제까지의 포르투갈 배의 상식에 따라 동진하였지만 육지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과감히 북진을 감행했을 때 마침내 육지를 발견하였다.

 

이렇게 해서 아프리카 대륙 남단에 도착한 것 같음을 알게 된 그들은 해안선을 따라 동진하여, 마침내 해안선이 북쪽을 향해 구부러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디아스는 아프리카의 동쪽 해안을 따라 그대로 북상하자고 제안하였지만 겁이 난 선원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거기에 제2의 석주를 세우고 되돌아 가기로 하였다. 도중에 큰 곶을 만났는데, 폭풍 때문에 가는 길에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는 데서 연유하여 ‘폭풍의 곶’이라 이름 붙이고 그 곳에 제3의 석주를 세웠다. 1488년의 일이다.

귀환한 그들로부터 사정을 전해들은 포르투갈 왕 주앙 2세는 그 후 1498년 바스코 다 가마가 이 곶을 통과하여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한데 연유하여, ‘폭풍의 곶’이라는 이름이 부적합하다고 여기고는 Cabo da Boa Esperana(희망의 곶)라고 개칭, 그것을 ‘희망봉’이라고 이름 지었다. 인도 항로를 찾는 희망을 북돋운 곶이었기 때문이다. Cape Town 근처 해발 256M(840ft),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의 아굴라스곶의 북서쪽 160km 지점. 대서양과 인도양 사이를 항해할 때 기점으로 표시했다.

 http://cafe.daum.net/sjs2030/MFik/21  -  꿈을 찾아 떠나는 여행 희망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