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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가 신점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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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시민신문=진료파일

신점숙작가 2007. 9. 10. 12:45

두 목숨

오늘도 나는 환자의 사망진단서를 쓴다. 선행사인, 최종사인 란에 병명을 적고 환자를 한번 뒤 돌아 본다. 내가 정말 최선을 다했을까? 그 할머니는 나에게 서운한 맘 없이 하나님 곁에 가셨을까? 를 수차례 내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다.
 필자가 수련의 1년차 때 처음으로 사망 선언을 했던 환자가 생각난다.
폐렴으로 입원하신 할아버지가 급성호흡곤란증후군에 빠지면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서 치료하고 있을 때 할머니가 “할아버지 가망 없어, 집에서 죽게 보내줘”하고 부탁을 하셨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인공호흡기를 심장이 살아 있는 한 분리하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한 상태로 할머니를 설득하며 치료하다가 결국은 회복되지 못하고 사망하게 되었다.  주치의 첫 별을 단 환자였고 나름대로 잠도 설쳐가며 최선을 다한 환자여서 할머니 옆에서 같이 울었던 환자다. 그러나 곧바로 할머니와 나의 기나긴 전쟁이 시작되었다. 할머니는 이미 죽은 사람은 집으로 갈 수 없다고, 할아버지 살아생전 집에도 못가고 돌아가시게 했다고 나의 가운을 잡고 원망을 하신 것이다. 그 당시에는 사람이 밖에서 죽으면 객사라고 해서 숨이 끊어지기 전에 빨리 집으로 환자를 옮겼고, 병원에서 사망했을 경우 보호자가 굉장히 난감해 했다. 그래서 거짓으로 기도 확보를 하고 호흡을 인공으로 만들어 집으로 모셔다 주는 것이 인턴의 주된 일과 중에 하나였다. 이후 어쩔 수 없이 장례식장으로 옮겼다. 자식이 없어 지인들 몇 분이 도와주셔서 장례를 치렀지만 그 당시 집에서 장례를 하는 것 보다 장례식장에서 치루는 것이 훨씬 비용이 많이 들었다. 할아버지가 사망한 이후 며칠 뒤에 할머니가 병동으로 찾아오셔서 필자 때문에 두 사람이 죽었다고 소리 소리치시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는 그동안 밀린 병원비에 장례식비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병원으로부터 독촉을 받을 때 마다 나를 찾아와서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가셨다. 이후 전세보증금을 빼서 해결하고 마지막으로 나를 찾아와서 미안하고 고맙다고 인사하시고 돌아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한동안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오늘 아침 사망 진단서를 쓰면서 문득 할아버지가 생각나고, 어제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전에 집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여러 번 했으나 필자나 보호자나 그 말을 무시하고, 병원 한 침상에서 외로이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하나님 나라에서 편히 계시라는 기도로 죄송한 마음을 접는다.
장례문화가 바뀌면서 가망이 없는 환자의 바람이 집에 가는 것 이지만, 요즘 아파트라는 주거 환경이 죽기 전에 집으로 간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지는 것 같아 환자를 보는 마음이 안타깝다.

동안산병원 3내과/과장 백만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