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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가 신점숙작가

다뉴브강의 야경(부다페스트)| 본문

▷♣[희정의여행이야기]/유럽여행 이야기

다뉴브강의 야경(부다페스트)|

신점숙작가 2012. 9. 12. 16:26

 

 

 

야경...!

여행에서 아주 근사하다고 생각하는것 중의 하나가 여행지역의 야경이 일품이다.

동남아에서 아름답다고 하는 야경 중 하나가 상해, 홍콩 야경을 손 꼽는다.

아주 화려한 조명이 여행의 피로를 즐거움으로 전환 시켜준다.

동유럽의 부다페스트에 있는 다뉴브강의 야경은 사믓 다르다. 동남아의 야경은 사이버틱한 화려한 아름다운

야경인데 비해 유럽 다뉴브강변의 야경은 약간은 무겁다고 해야 하나...?

어둠이 내리고 건물에 불이 밝혀지면 다뉴부강변의 아름다움이 아주 근사하게 무개를 더하면서 관광객을 사로잡는다.

우리 일행이 도착했을 때 는 하늘에 구름이 마치 잉크를 뿌려 놓은 듯한 풍광으로 맞이했다.

하늘의 구름빛이 강물에 비쳐져서 하늘과 강이 맞닿은 듯한 느낌으로 환상적으로 고급스럽게 다가왔다.

여기에 움직이는 배에서 담은 다뉴브강변의 야경만을 올려봅니다.

비나리투어와 동유럽 함께 하셨던 분들은 다시 그 느낌을 느껴 보시기 바라는 마음으로..

 

 

 

체코
체코 공화국(Česká republika 체스카 레푸블리카)은 중앙유럽에 있는 공화국이다.

북서쪽과 서쪽은 독일, 남쪽은 오스트리아, 남동쪽은 슬로바키아, 북동쪽은 폴란드와 닿아 있다. 수도는 프라하이고,

주요 도시로 브르노, 오스트라바, 즐린, 플젠 등이 있다.

크게 체히, 모라바, 슬레스코 세 지방으로 나뉜다. 체히는 라틴어로 '보헤미아', 모라바는 '모라비아',

슬레스코는 영어식으로 '실레지아' 또는 독일어로 '슐레지엔'으로 불리기도 한다.

체코는 1993년 체코슬로바키아로부터 분리되었다. 1999년 3월 12일에는 NATO에 가입하였으며

2004년 5월 1일에는 유럽 연합의 정회원국이 되었다.

 

 

다뉴브강(도나우강)
도나우 강은 독일 남부에서 발원하여 루마니아 동쪽 해안을 통해 흑해로 흘러가는 길이 2,860km의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다. 도나우 강은 독일 남부의 브레게 강과 브리가흐 강이 합류하면서 시작되어 동쪽

으로 흘러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대평원을 지나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이른다.

여기서 강은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흐르면서 카르파티안 산맥과 발칸 산맥 사이를 통과하는데

이곳은 철문(the Iron Gate)이라고 불리는 유럽에서 가장 깊은 협곡이다.

하류에 이르면 저지대인 루마니아 남부의 왈라키아 평원을 지나게 된다흑해에 가까워지면서

 도나우 강은 도브루자 구릉지대를 만나면서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흐르다가 다시 동쪽으로 흘러 비로소 흑해로 유

입한다. 강 하구에서는 세 개의 주요 분류로 나누어지면서 삼각주를 형성하는데 그 면적은 약 5,000㎢이다

 

 

부다페스트
부다페스트(Budapest 부더페슈트[*] 문화어: 부다뻬슈뜨)는 헝가리의 수도이자 정치·산업· 상업·

교통·문화의 중심지이다. 인구는 180만을 상회하는데 1980년대 중반의 207만보다는 낮은 수치이다. 현재 중유

럽 최대의 도시이다. 1873년에 도나우 강 서편의 부더(Buda)와 오부더(Óbuda),

동편의 페슈트(Pest)가 합쳐져 오늘날의 부다페스트가 되었다

 따라서, 부다와 페스트의 두 지역으로 대별된다. 부더와 페스트는 전혀 다르다고 해도 좋을 만큼 서로 경치가 다르다.

 역사적 전통이 남아 있는 부다의 사적들과 장려한 의사당 등으로 알려져 있는데, 1956년 헝

가리 혁명으로도 유명하다.

부다페스트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록되어 있다. 도시 중심에 도나우강이 흐르고 있어 "도나우의 진주",

""도나우의 장미"라고 불린다. 구릉지대인 부더는 기복이 심하고 녹음이 우거져 있다.

도나우 강과 이어지는 언덕에는 변화의 역사를 겪어온 왕궁이 장엄하게 서있고,

서쪽에는 야노슈 산이 우뚝 서있다. 그 산자락에 한적한 주택가가 펼쳐지며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양안의 지구를 연결하는 대표적인 다리가 세체니 다리이다. 북위 47도

29분57초, 동경19도2분38초에 위치한다.

 

 

 


역사
다페스트의 기록된 역사는 서기 89년경에 건설된 로마 제국의 아쿠인쿰(Aquincum) 성에서 시작된다.

이 성은 훗날의 오부더의 터에 가까운 곳에 자리잡았던 켈트족의 거주지역에 세워졌으며 106년부터 4세기말까지

는 로마 제국의 저(低) 판노니아(Lower Pannonia) 주의 주도였다. 훗날의 페슈트 자리에는

'아쿠인쿰 반대편'의 뜻인 콘트라 아쿠인쿰(Contra Aquincum) (또는 트란스 아쿠인쿰 Trans Aquincum)이 세워졌다.

900년경 이 지역에는 오늘날 헝가리인들의 조상인 마자르(Magyar)인들이 아르파드의 인솔하에 들어왔다.

이들은 판노니아와 도시를 점령하고1세기 후 헝가리 왕국을 세웠다. 이때 이미 중요한 성이었던 페슈트

는 1241년 몽골제국의 바투가 이끄는 정서군(征西軍)의 침략을 받았다.

 

 

벨라 4세의 통치하에, 곧 피해를 복구하였다. 그러나, 1247년부터 왕궁 소재지였던 부더가 페슈트를 대체하여

헝가리의 수도가 되었다.(1361년)16세기 오스만 제국이 헝가리 대부분을 정복하면서 수도의 자리를 잃게

된 이들 도시의 성장이 지체되었다. 페슈트는 모하치 전투에 의해 헝가리 왕국이 거의 붕괴된

1526년에 오스만제국에 의해 침략당했다. 1541년에는 부더가 점령되고 헝가리중앙부를 지배하는 오스만제국 속령으로

서 부더주(州)가 설치되어 부더는 오스만 총독의 주류지가 되었다. 한편, 페슈토지구는 그 시기에 대부분 버려진 상태였다.

1526년 이후, 명복 뿐이긴 하였으나 오스트리아대공인 합스부르크 왕가가 헝가리 왕을 겸하게 되었다(헝가리 영토

대부분은 잃었지만). 합스부르크가는 1686녕 왕국령을 탈환하였다. 1686년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에 다시

점령될 때까지 페슈트는 상당히 낙후되었다.1723년부터 왕국의 행정 기관 소재지였던 페슈트는 18세기와 19세기에

빠른 속도로 성장을 하게 되었다. 1873년 부더, 오부더와 합쳐진 후에도 부다페스트의 성장은 페슈트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1800년에 이미 부더와 오부더를 합친 인구보다 많은 인구가 페슈트에서 살았으며 그후

백년동안 20배로 증가하여 60만이 되었다. 같은 기간 부더와 오부더의 인구는 5배 증가에 그쳤다.
부더와 오부더, 페슈트의 행정 통합은 1849년 헝가리의 혁명 정부가 처음 추진했지만 합스부르크

지배가 돌아오면서 철회되었다. 하지만 1867년 합스부르크와 헝가리의 대타협으로 헝가리 왕국의 자치 정부가 들어

서면서 이들은 드디어 현재의 부다페스트로 합쳐졌다. 부다페스트의 총 인구는 1840년에서 1900년 사이 7배로 증가

해 73만이 되었다.

 

 

 

1896년에는 런던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지하철이 개통됐다.20세기 부다페스트의 인구

성장은 주로 외곽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헝가리의 산업이 수도에 집중되면서 우이페슈트(Újpest) 지역의 인

구는 1890년-1910년간 2배 이상 증가했으며 키슈페슈트(Kispest) 인구는 1900년-1920년간 5배 이상 증가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인명피해와 1920년 헝가리 왕국이 원래 영토의 반 이상을 잃은 것도 부다페스트의

성장을 일시적으로 밖에 막지 못하였다. 부다페스트는 영토는 작아졌지만 독립한 헝가리의 수도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1930년에 부다페스트의 인구는 백만이었으며 그 외곽 지역에는 40만이 더 살았다.

 

부다페스트에 거주하던 20만 유대인 인구의 3분의 1 정도가 제2차 세계

대전때인 1944년 나치 독일 점령하에 행해진 대학살에 희생되었다. 곧이어 겨울에는 소련의 포위 공격으로

도시가 심하게 파괴되었다. 그후 부다페스트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재건되면서 헝가리의 공산 정부

(1947년-1989년)가 1960년부터 추진한 실용주의 노선의 선전에 어느 정도 이용되기도 하였다.

1980년대 이후 부다페스트는 헝가리에서 전체적으로 나타난 이민 증가와 자연적 인구 감소로

인구가 줄어드는 추세이다.

 

 

역대 인구
1800년: 54,200명 / 1830년: 102,700명 / 1850년: 178,000명
1880년: 370,800명 / 1900년: 733,400명 / 1925년: 957,800명

 

 

 

 

부다페스트의 행정구
터반(Tabán), 바르(Vár) - 제1구
로저돔브(Rózsadomb), 퍼셔레트(Pasarét) - 제2구
오부더(Óbuda) - 제3구
우이페슈트(Újpest) - 제4구
벨바로슈(Belváros) - 제5구
테레즈바로슈(Terézváros) - 제6구
리포트바로슈(Lipótváros) - 제7구
요제프바로슈(Józsefváros) - 제8구
페렌츠바로슈(Ferencváros) - 제9구
쾨바녀(Kőbánya) - 제10구
켈렌푈드(Kelenföld) - 제11구
헤지비데크(Hegyvidék) - 제12구
언절푈드(Angyalföld) - 제13구

 

주글로(Zugló) - 제14구 (얼쇼라코슈(Alsórákos), 헤르미너메죄

(Herminamező), 이슈트반메죄(Istvánmező), 키슈주글로(Kiszugló), 너

지주글로(Nagyzugló), 라코슈펄버(Rákosfalva), 퇴뢰쾨르(Törökőr), 바로슈리게트(Városliget))
라코슈펄로터(Rákospalota), 페슈투이헬리(Pestújhely) - 제15구
마차슈푈드(Mátyásföld), 셔슈헐롬(Sashalom), 친코터(Cinkota) - 제16구
라코슈케레스투르(Rákoskeresztúr), 라코슈처버(Rákoscsaba), 라코슈리

게트(Rákosliget), 라코슈헤지(Rákoshegy), 라코슈케르트(Rákoskert) - 제17구
페슈트뢰린츠(Pestlőrinc) - 제18구
키슈페슈트(Kispest) - 제19구
페슈테르제베트(Pesterzsébet) - 제20구
체펠(Csepel) - 제21구
부더테테니(Budatétény), 너지테테니(Nagytétény), 부더포크(Budafok) - 제22구
쇼로크사르(Soroksár) - 제23구

 

교통
부다페스트의 시내 공공교통기관은 BKV(부다페스트교통공사)에 의해 일원적으로 운행되고 있다. 런던,

 이스탄불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영업을 개시한 지하철인 부다페스트 지하철과 트램, 트롤리버스를 운행하

고 있다. 4호선 및 6호선의 트램은 트램로선으로서는 세계에서 제일가는 이용자수를 나태내고, 54m의

차량편성은 세계최장이다. 48시간・72시간의 2종류가 있는 부다페스트카드를 구입한 경우, 무료승차가 가능하

다. 헝가리국철(MÁV)은 시내의 주요 3개역으로부터 헝가리 국내와 유럽 각지에 열차를 운영하고 있다.

부다페스트동역(Keleti, 페스트 쪽) / 부다페스트서역(Nyugati, 페스트 쪽) / 부다페스트남역(Déli, 부더 쪽)
HÉV(Budapesti Helyiérdekű Vasút)에 의해 교외전차도 운행되고 있다.

그 밖에, 부다페스트 어린이 철도(Gyermekvasút), 왕궁까지 올라가는 케이블카인 푸니쿨라(funicular) 등도 유명하다.

공항은 페리헤지 국제공항(Liszt Ferenc Nemzetközi Repülőtér)이 있으며 네브리게드 장거리국제선 버스 터미널도 있다.

도나우 강을 이용하여 브라티슬라바를 경유하여 빈으로 가는 국제항로도 MAHART Passnave

에 의해 운항되고 있다. 선착장은 시내 중심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

 

 

세계문화유산
1987년, "부다페스트, 도나우강안과 부다성"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2002년에 안드라시 거리 및 그 지하 (부다페스트 지하철)이 등록대상에 추가되어, 2003년에는 등록명칭이 "도

나우강안, 부다성 지구, 안드레시 거리를 포함한 부다페스트"로 변경되었다.

 

주요등록물건
부다 성 : 부다 성은 헝가리 국왕들이 살았던 역사적인 성채이다. 과거에는 왕궁(Királyi-palota)

또는 왕성(Királyi Vár)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부다 성은 중세와 바로크, 19세기 양식의 가옥들과 공공건물들로

유명한 옛 성곽 지역(Várnegyed) 옆에 있는 부다 언덕 남쪽 꼭대기에 지어졌다. 아담 클라크 광장과

푸니쿨라(계단식 열차) 옆 세체니 다리와 이어져 있다. 부다 성은 1987년 공표된 부다페스트 세계문화유산의

일부이기도 하다.마차슈 성당 : 1255년, 부다 성 내에 건축되어, 역대 국왕의 결혼식과

대관식의 장소로서 이용되었다. 1479년에 마차슈 1세에 의해 대개축됨으로써, 높이 80미터의 첨탑이 증축되었다.
국회의사당 : 1904년에 완성된 네오고딕건축으로, 도나우강변에 접하고 있다. 또한, 헝가리 국장에도 포함되어 있는

성이슈트반의 왕관이 보관되어 있다.
세체니 다리 : 도나우강의 양안에 펼쳐진 부다지구와 페슈토지구를 연결한다.
안드라시 거리 : 2002년에 역사지구의 확장에 의해 추가된 거리이다. 거리 이름의 유래는, 건설을 추진하였던

 안드라시 수상이다. 파리의 샹제리제 거리를 모망하여 플라타너스를 나란히 심어놓은 거리이며, 세체

니 다리의 끝에서 페슈토지구의 시민공원까지의 거리이다. 지하에 유라시아 대륙 처음의 지하철,

지상에는 성이슈트반 대성당, 영웅광장, 세체니온천, 리스트음악원 등이 있다.

 

 

건축
리스트의 조국인 헝가리는 다뉴브 강변의 국회의사당을 중심으로 뚜렷한 사계절 속에 아름다운 문화·

관광지가 빛나는 곳이다. 부다 성은 부다 지구의 남쪽에 있는 네오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성이다. 13세기 후반

벨러 4세의 명으로 방어를 목적으로 처음 건설되었다. 이후 19세기 후반부터 대규모 공사가 이루어져 1905년

바로크와 네오바로크양식으로 완성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된 것을 1950년대에 복구하였다.

지금은 부다페스트 역사박물관과 국립박물관, 국립도서관으로 쓰이고 있으며, 성 곳곳에서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고대에서부터 세계 2차대전까지 무기류 및 미술품, 노동운동의 역사에 관한 자료 등을 볼 수 있다. 

어부의 성채(Halászbástya)는 부다의 구릉 뒤에 위치한 신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이다.

뾰족한 고깔 모양의 일곱 개의 탑이 마치 동화 속의 성을 연상케 한다. 일곱 개의 탑은 수천년 전 나라를 세운 일곱 개

의 마자르 족을 상징한다. 어부의 성채란 이름의 유래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지역방위를 위하여

18세기에 어부들이 축조하여 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옛날에 어시장이 있던 장소 때문이라는 설이

다. 이곳에서는 도나우 강변의 아름다운 도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문학 속의 부다페스트한국의 시인 김춘수는 시(詩),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에서 1956년 헝가리 혁명을 묘사하고 있다.


비나리투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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