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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가 신점숙작가

외국관광객으로 넘처나는 서울 명동 충무로 스케치 - 한국의 관광명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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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관광객으로 넘처나는 서울 명동 충무로 스케치 - 한국의 관광명소

신점숙작가 2012. 10. 8. 15:50

 

 

서울시

친구의 아들 결혼식이 서울 세종호텔에서 있어 갔다가 명동 충무로에서 꿈을 키워가든 젊은 시절을 생각하며

명동거리를 다시 돌아 보았다.

거리의 모든 상점은 외국인을 타킷으로(중국.일본)다 변해 버렸다.

각 상점 앞에는 중국어.일본어를 하는 직원들이 호객행위를한다.

거리에서 이동하는 사람들의 앞뒤로는 모두 중국인 일본인으로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 드물다

마치 외국에 온거 같은 어색함과 호기심으로 명동거리를 모처럼 돌아 보았다.

내국인을 대상으로 하던 상점의 돈벌이가 이제는 달러 수입으로 생계를 이어 가고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옛날 낭만이 있던 명동거리의 모습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다.

관광객으로 넘처나는 명동거리, 외국인들에게 고스란히 내주고 내국인들은 어디로 갔을까..

모처럼 명동 충무로 거리를 스케치 해 보았다.
금년 겨울 유행 하게 될거 같은 여성들의 쇼울..

 

 

 서울특별시(—特別市)는 대한민국 북서부에 있는 대한민국의 최대 도시이자 수도이다.1394년 조선의 정도(定都)

 이래로 600년 이상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면적은 대한민국 국토의 0.6%에 불과하지만 대한민국 인구의 1/5 이상인 약 1040만 명이 살고 있어서 인구밀도가 매우 높다.

도시의 중앙으로 한강이 흐르고, 북한산(836m), 도봉산(740m), 인왕산(338m), 관악산(629m) 등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의 도시이다. 동서간의 거리는 36.78km, 남북간의 거리는 30.3km이며, 그 넓이는 605.27km²이다.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하계 올림픽, 2002년 FIFA 월드컵, 2010년 G20 정상회의,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가

개최된 국제적인 도시이다.

시청이 소재하는 중구를 중심으로 도심을 형성하며, 25개 자치구로 행정구역이 구성된다.

 

 

 

역사
고생대 때는 서울이 바다였으나 중생대 때부터 육지가 되었다. 서울에는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선사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지로는 암사동 선사주거지가 있다. 삼국시대에는 기원전 18년부터 475년까지 백제의

수도였으며 삼국의 주도권 쟁탈전이 가장 치열했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1067년 (고려 문종 21) 때 3경(三京)의

하나인 남경(南京)으로 승격되면서 중요한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조선 태조가 1392년 개경에서 조선을 건국하고 1394년 한양으로 천도했다. 당시 서울로 도읍을 정한데에는 풍수 사상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1395년에는 한성부로 개칭하고 5부(部) 52방(坊)의 행정 구역을 확정했다. 한성부의 지리적 범위는 사대문 안 도성과

성저십리(城底十里)라 하여 도성 밖 10리(약 4km)까지가 해당되었다. 이후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전란을 거치며,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는 시련을 겪었다.

1910년 일본 제국에 의해 한성부는 경성부로 개칭되고 경기도에 예속시켜 그 지위를 격하시켰다.

또한 1914년 행정구역 대개편으로 경성부 지역에 속했던 한성부 성저십리의 대부분의 지역을 경기도 고양군(현 고

양시) 에 편입시켰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도성의 성문이나 성벽일부를 훼손하고 신작로나 철로를 개설하는 등,

조선 개창이후로 존재했던 서울의 역사성과 공간구조 및 이용성이 매우 심각하게 왜곡·훼손되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경성부는 다시 서울로 고쳐지고 1946년 9월 28일에 경기도에서 분리하여 서울특별자유시로 승격하였다.

이후 1949년 8월 15일 서울특별시로 개칭되었으며, 1950년 한국 전쟁으로 인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처음으로

6월 28일에 점령했으나 9월 28일에

 

 

 

다시 수복을 하였고 1.4 후퇴때 다시 서울을 내주고 폐허가 되었지만, 1951년 3월 14일에 두번째로 서울을 수복하고 재건과

경제 발전을 이루며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서울의 범위는 1914년까지는 한성부 도성지역이었던 현 종로구, 중구 일대와 한성부 외곽지역인 성저십리 지역을 비롯하여

현 서울특별시 강북의 상당지역을 차지하였다가 1914년 일제에 의하여 현 종로구, 중구 일대와 용산구 일부로 축소되었으나

1936년, 1949년, 1963년, 1973년 등 몇 차례에 걸쳐 인접한 경기도 지역 일부를 편입하는 형식으로 현재와 같은 규모로

성장하였고, 1995년 3월 1일 광명시의 일부분이 금천구에 편입된 것[5]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확장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 서울 주변의 인천과 경기도의 위성도시들이 성장하면서, 서울을 중심으로 거대한 도시 구조인 수도권이 형성되었다.

http://cafe.daum.net/sjs2030 - 여행이 시작되는곳

 

지명
"서울"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한다. 학계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수도(首都)를

뜻하는 신라 계통의 고유어였던 서라벌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이때 한자 가차 표기인 서라벌이 원래 어떤 의미였을지에

대해서도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삼국사기 등에서 서라벌을 금성(金城)으로도 표기했다는 것에 착안하여 "쇠[鐵]-

벌[源]"의 뜻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신라(新羅)까지 포함하여 "설[새: 新, 金]-벌[땅: 羅, 城]",즉 '새로운 땅'이라는

뜻으로 새기는 견해도 있다. 고대-중세 한국어에서 서라벌을 정확히 어떻게 발음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확인된

 바가 없으며, 그 발음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은 훈민정음의 창제 후 "셔블"이라는 표기가 등장하고 나서이다.

서울의 로마자표기 Seoul은 19세기 프랑스 선교사들이 서울을 프랑스어로 Sé-oul(쎄울)로 표기한 데서 비롯되었다.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서울을 Séoul로 표기하고, 스페인어권에서는 Seúl로 쓰나 모두 '쎄울'로 읽는다. 대표적인 예로 1981년

9월 30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스페인 출신 IOC 사마란치 위원장이 제24회 하계올림픽 개최지 선정발표때 '쎄울'

이라고 외친 바 있다. 또, 영미권에서는 일반적으로 Seoul로 쓰고 영혼을 뜻하는 단어 Soul와 같은 '쏘울'로 읽는다.

서울시에서는 이러한 점을 착안하여 2006년 11월 13일 서울시의 서브슬로건(Sub slogan)을

Soul of Asia로 지정하였다.

 

 

서울은 한자어가 아닌 고유어 지명이기 때문에 중국을 비롯한 한자 문화권에서는 오랫동안

서울을 조선시대의 명칭이었던 한성(漢城: 중국어 간체: 汉城, 병음: Hànchéng 한청으로 써왔다. 최근(2005년 1월)에는

서울시가 서울과 발음이 유사한 서우얼(중국어 간체: 首尔, 정체: 首爾, 병음: Shǒuěr 서우얼 을 서울의 공식적인 중국어 표기로 정하면서 점차 이 표기가 확산되어 가는

추세이다. 그러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제방송인 조선의 소리 방송의 중국어 프로그램에서는 2009년까지도

서울을 '한청'(漢城: 중국어)이라 말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서울을 한성(漢城) 이외에도 경부(京府), 경성(京城), 경도(京都), 경사(京師) 등으로 쓰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며,

김정호의 수선전도에서 알 수 있듯 수선(首善)으로 표기한 예도 있다. 그 밖의 표기 중에는 서울의 한자 음차 표기로서

박제가가 북학의에서 썼던 '徐蔚(서울)'이 있다. 이는 모두 수도를 뜻하는 일반명사들로서 '서울'이 원래는

서울 지역(사대문 안과 강북의 성저십리)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 수도를 뜻하는 일반명사였다는 방증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일반명사 '서울'을 '한 나라의 중앙 정부가 있고, 경제, 문화, 정치 등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도시'라고 정의하고 있다.

1910년 10월 1일에 일제가 한성부를 경성부(京城府)로 개칭하면서 일제강점기에 서울은 주로 경성(京城)으로 불렸으며,

1945년 광복 후에는 '경성'이란 말은 도태되고 거의 '서울'로 부르게 되었다.

  

 터키의 켑밥도 있다.↑


지리
북위 37° 33′, 동경 126° 59′의 대한민국 북서부에 위치하는 분지 지형의 도시이다. 동서 간의 거리는 36.78km, 남북 간의

거리는 30.3km이며, 면적은 약 605.25km²이다. 한강이 도시를 동에서 서로 가로질러 흐른다. 도심에는 남산이 있고,

외곽으로 북한산, 관악산, 도봉산, 우면산, 불암산 등 서울을 둘러싸며 경기도와 자연적 경계를 이루고 있다

.

 

지형
도심 서울 도심 주변에는 도심을 관통하는 청계천의 계속된 침식으로 북악산과 남산에서 산기슭이 발달되어 기복이 많은

지형이 되었다. 을지로에 있던 구리개, 조선일보사 앞의 황토현(黃土峴)이란 기복은 가로공사와 도시개발에 따라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으나, 현재도 율곡로·퇴계로·을지로 곳곳에서 기복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기복 때문에 이 지역에는 고개 또는 현(峴)이란 지명이 남아 있다. 이러한 지명에는 충무초등학교 부근의

풀무고개 또는 대장고개(治峴), 인현(仁峴)·종현(鍾峴)·진고개(泥峴), 계동(桂洞) 일대에 관상감현(觀象監峴), 가회동

일대에 맹현(孟峴)·홍현(紅峴)·안현(安峴)·송현(松峴)·배고개(梨峴) 등이 있다.

이러한 지형은 조선시대에 잘 이용되었다. 풍수설에 따라 북악산 기슭에는 경복궁·창덕궁·창경궁·종묘, 인왕산 기슭에는

덕수궁을 지었고, 궁궐 사이는 궁인(宮人)·귀족·고관 들의 저택지로 이용하였다. 이 지역의 침식으로 운반된 토사는 청계천

 연안에 퇴적되어 평탄한 시가지를 형성하게 하였다. 따라서 도심지에서 가장 평탄한 곳은 청계천 북쪽의 연안으로

동대문에서 세종로 사이의 종로이며, 이곳에서는 지형의 기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삼각지로부터 해발고도 20m의 갈월동을 지나면 지형이 차차 높아져서 서울역 앞에 오면 더욱 높아지기 시작하고,

숭례문 부근은 해발고도가 40m 내외가 된다. 이곳은 분수계(해발 36.6m)가 되어, 동으로는 청계천이 동으로 흘러

중랑천과 합류한다

 

 

서울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북한산을 최고점으로 한 고양·양주구릉과 경기평야의 접촉 지대에 있다. 주위에는 북한산(836m)·

도봉산(717m)·인왕산(338m)·관악산(629m) 등 500m 내외의 산과 구릉이 자연성벽과 같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이다.

광주산맥의 한 줄기인 도봉산은 백운대·인수봉·노적봉의 3개 봉우리가 솟아 있는 북한산과 이어져 있고, 그 산줄기는

다시 남으로 뻗어 북악산(342m)을 솟게 하였다. 그리고 북악산에서 동으로 뻗은 산줄기에 낙산(125m), 서로 뻗은 산줄기에

인왕산이 있다. 인왕산에서 뻗은 산줄기 중 남쪽으로 뻗은 것은 숭례문을 지나 남산(265m)·응봉(175m)과 이어져 있고,

서쪽은 무악재의 안부(鞍部)를 지나 안산(296m)과 이어져 있는데 모두 구릉성 산지이다. 한강 남쪽에는 100m 이하의

구릉지가 펼쳐져 있고, 남쪽에 관악산(629m)이 천연의 요새와 같이 서울의 외곽에 솟아 있다. 그 외에 서울 동부에 불암

산, 수락산, 아차산이 있다.

 

 

임야
서울의 임야면적은 157.35km²(2008년 기준)이다. 임야의 51.5%는 국공유림이고 49.5%는 사유림이다. 임야의 분포는 산이

많은 노원구에 17.73km², 관악구에 17.53km², 강남구에 16.11km²가 있어서 전 임야의 32.6%를 차지하고 있다.

이 임야의 많은 부분이 개발 제한 구역으로 묶여 있어서 임야는 잘 보호되고 있는 편이긴 하지만, 임야 면적은 매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한강과 하천
강북과 강남 사이에는 남산 남쪽을 북동-남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한강 하류가 지나고 있다. 하류이기 때문에 구배는

완만하며 물의 흐름은 느리나, 홍수 때는 상·중류의 유역 지방으로부터 흘러내려오는 물 때문에 수위가 높아진다.

여의도와 잠실은 상류로부터 운반되어 온 토사가 퇴적된 하중도이다. 이 섬은 제방을 쌓아 신흥 아파트 단지가 되

어 새로운 주택지로서 발달되었다. 한강물은 서울시민의 수돗물로도 공급되는데, 과거에는 뚝섬과 선유도 등에도 취수장이

있었으나 현재는 잠실 수중보와 팔당 저수지로부터 물을 끌어들여 공급하고 있다.

한강은 일제 강점기까지 별다른 정비가 없었다가, 1960년대 이후 한강을 정비하는 사업이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1968년 밤섬을 폭파한 뒤 여의도를 개발하였고, 1970년부터 1975년까지 잠실 개발계획으로 잠실섬과 부리도의

남쪽 물길(송파강)을 막아 육지로 만들었다.[15][16] 1982년 시작된 '한강종합개발사업'을 통해 둔치를 조성하고,

강변 양쪽에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를 놓았다. 2006년에는 한강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한강 주변을 다시 정비하였다.

 

 

하천
한강 - 서울을 크게 강남과 강북 지역으로 나눈다.
불광천, 안양천, 중랑천, 청계천, 탄천, 홍제천, 양재천 등

 

 


여의도, 밤섬, 노들섬, 선유도, 서래섬, 난지도 등
여의도 - 국회의사당, 증권 거래소를 포함한 증권가, 방송국이 자리잡고 있다.

 

 

지질
서울의 지반은 주로 중생대 말기에 형성된 담홍색의 화강암과 고생대 이전에 이루어진 화강편마암의 두 종류로 되어 있다.

화강암은 서울의 동북부와 관악산 일대에 분포되어 있고, 화강편마암은 주로 남서부 일대에 분포되어 있는데,

그 경계선은 대체로 북아현동에서 서소문, 남산 서쪽을 돌아 한남동과 행당동을 지나고 있다.

화강암은 조립질이면서 다른 암석과는 다르게 절리(節理)가 잘 발달하고 풍화작용에 약하며, 도봉산·백운대·인수봉과 같은

봉우리가 기암절벽을 만들어 서울 특유의 절경을 보여 주고 있다. 홍제동·안암동·창신동·장위동 등지의 화강암은

1990년대까지만 하여도 건축재로 쓰이곤 했다.

화강편마암은 견고한 암석이지만 접착성이 적기 때문에 쉽게 붕괴되어 봉우리를 이루지 못하나, 작은 기복을 이룬

노년기 지형을 나타내주고 있다. 특히 동작동 부근의 화강편마암은 판형으로 쉽게 벗겨져 온돌의 구들장으로 쓰였고,

화강편마암이 풍화되어 된 천호동의 점토는 벽돌과 옹기 제조의 원료로서 많이 쓰였다.

 

 

기후
서울은 냉대 동계 소우 기후(쾨펜의 기후 구분 Dwa)에 속하며, 구분에 따라서는 습윤 대륙성 기후로 분류하기도 한다. 기온의 연교차가 큰 대륙성 기후이기도 하다.

 

 

계절
전체적으로 여름과 겨울이 길고, 봄과 가을이 짧다. 봄은 3월 중순부터 시작되는데 월평균 기온이 0 °C 이상으로 올라가고

날씨는 따뜻해진다

. 그러나 제트기류가 서쪽에서 불어올 때 황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여름은 20 °C 이상의 기온이 계속되며 7, 8월에는 30 °C

내외의 무더운 날씨가 많다. 또한 장마나 집중호우가 계속되어 많은 비가 내리므로 홍수의 피해가 크다. 가을은 하늘이

높고 맑은 날이 계속되며, 기온은 차차 내려가 선선한 날씨가 계속된다. 겨울은 기온이 0 °C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100일 내외,

최저기온이 -10 °C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29.4일로서, 추운 날이 비교적 오래 지속되고 있다. 눈이 내리는 기간은

125일, 얼음이 어는 기간은 164일이나 강수량은 여름에 비하면 훨씬 적어 건조한 날씨가 많다.

 

 

기온
최근 30년(1981년~2010년) 기준으로 서울의 연평균 기온은 12.5 °C 이고, 최난월인 8월 평균 기온은 25.7 °C, 최한월인

1월 평균 기온은 -2.4 °C이다. 특히 최한월의 평균 기온은 같은 위도 상의 다른 도시에 비해 낮은 편이다. 여름 기온과 겨울

기온의 연교차가 28.1°C로 매우 크기 때문에, 겨울은 매우 춥고 여름은 몹시 무더운 대륙성 기후이다.

시내의 기온 분포는 중구와 같이 가옥이 밀집한 곳과 많은 자동차가 배기가스를 뿜으며 지나는 간선도로, 그리고

도심부의 포장도로가 지나는 지역이 가장 기온이 높고, 한강 연안과 가옥의 밀집도가 낮은 지역은 기온이 낮게 나타나고 있다.

한편 도심부의 기온은 여름철의 6, 7, 8월 3개월을 제외하고는 해가 거듭될수록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이 상태로 계속

 기온이 높아진다고 가정하면 약 100년간에 평균기온은 1.8 °C, 일 최저 기온의 연평균치는 4.1 °C씩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시내의 습도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강수량
최근 30년(1981년 ~ 2010년) 기준으로 연평균 강수량은 약 1,450.5mm이나, 1990년에는 2,355.5mm, 1949년에는 633.7mm가

내릴 정도로 연 강수량의 기복이 심한 편이다. 계절별 강수량은 여름철에 892.1mm, 겨울철에 67.3mm로 여름철에

강수가 크게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바람
한반도는 계절풍 지대에 속하기 때문에 서울은 여름에 남동풍, 겨울에 북서풍이 빈번하게 분다. 도심부에서 도로 위를 부는

도로바람은 남산의 북사면에서 발달한 차가운 공기가 충무로 지하상가 위를 지나 을지로 입구 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퇴계로 2가 부근에서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분다.

 

 

한국은행건물 ↑

환경
시내에는 큰 건물과 공장의 굴뚝에서 내뿜는 매연, 자동차의 배기가스 등의 오염물질이 늘어나면서 태양광선이 제대로

땅에 닿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시내에 내리쬐는 일사량은 매년 감소되어 가고 있다. 비행기나 높은 산 위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면 연기와 먼지를 품은 오염대기층인 연진모자가 상공을 덮고 있어 서울 시야를 나쁘게 하고 있다.

2011년 환경부가 7대 도시의 대기 오염물질을 조사한 결과, 전국의 미세먼지 평균농도는 51㎍/㎥이고, 가장 대기가 깨끗한

도시는 대전(44㎍/㎥), 가장 대기가 더러운 도시는 인천(55㎍/㎥)이며,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49㎍/㎥로 나타났다.

 

 

인구
천도(1394년)한 후인 태종 때 인구는 10만 명이었으며 이후 1900년대까지 20만 명 선을 유지하였다.
 일제 강점기 이후 서울의 인구는 지방 인구의 도시집중 현상으로 급격하게 늘어나서 과밀화 현상을 빚고 있다.

1919년에 인구 25만 명, 인구밀도 6,874명/km²이었던 것이 1925년에는 인구 34만 명, 인구밀도 9,297명/km,

1930년에는 인구 33만 명, 인구밀도 9,824명/km², 1935년에는 인구 40만 명, 인구밀도 11,172명/km²에 달하였다.

이에 따라 1936년에 시역을 확장하여 인구는 73만 명으로 증가하고 인구밀도는 5,430명/km²으로 감소하였다. 1945년 광복

당시의 인구는 90만 명, 인구밀도 6,628명/km²이었는데, 외국에서의 귀국,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 등으로 1946년에는

인구가 127만 명으로 급격하게 증가하였고, 인구밀도는 9,309명/km²이 되었다. 1948년에는 인구 171만 명에 인구밀도

12,055명/km²으로, 1949년에는 136.05km²이었던 시의 면적이 268,35km²로 확장되었고 인구는 142만 명,

인구밀도는 5,284명/km²이 되었다.

 

 

1951년에는 한국 전쟁으로 인구가 65만 명, 인구밀도는 2,416명/km²으로 급격하게 감소하였다. 그러나 1953년에 휴전과

환도로 다시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하여 1955년에는 인구 157만 명, 인구밀도 5,869명/km², 1960년에는 인구

245만 명(전체 인구의 10%), 인구밀도 913명/km², 1970년에는 인구 543만 명(전체 인구의 18%), 인구밀도

9,013명/km², 1980년 인구는 836만 명, 인구밀도 13,074명/km², 1990년에는 1,061만 명, 인구밀도가 15,532명/km²이 되었다.

이렇게 끝도 없이 증가하던 인구도 1992년 인구 1,097만 명, 인구밀도 18,121명/km²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는 정부의 서울 인구 분산 정책에 따른 것으로. 서울 교외에 만들어진 분당·일산·평촌·중동과 분당,일산등의 1기신도시

포화상태로 현재 운정,판교,동탄신도시 이주에 의한 것이다. 계속 감소하던 인구는 2003년 인구 1,028만 명,

인구밀도 16,975명/km²을 정점으로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뉴타운'으로 불리는 서울 시내 대규모 재개발로

인한 인구 유입의 영향이 크다. 2009년 12월 31일 현재 총 인구는 10,464,051명, 총 세대수는 4,116,660가구, 인구밀도는

17,289명/km²으로 대한민국 도시 중에서 가장 인구가 많다.


서울의 인구증가를 보면 1960년경부터 대한민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각종 산업이 발전하면서 고용 증대가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농촌인구가 급격하게 서울로 집중하게 되었다. 농촌에서는 생계가 어려워 무작정 서울로 온 이농 인구 덕분이었다.

서울은 자연증가보다 사회증가에 의하여 과밀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서울에는 교육기관이 많이 분포하고 있어서 서울 인구의 1/4이 학생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주로 서울에서

취업을 하고 생활 터전을 마련한다.

 

 

행정구역
서울특별시에는 2012년 8월 1일 현재 25개 자치구와 423개 행정동이 있다. 서울특별시의 국회의원 선거구는 2012년 2월 27일

현재 48개 지역구로 나뉘어 있으며 거주 인구만을 기준으로 하면 상한 61만 2천명, 하한 10만 4천명 으로 1개의 지역구를

나누었다.

 

 

 주요기관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입법부·행정부·사법부 등 국가의 통치 기관이 집중되어 있다. 종로구에는 청와대와

정부중앙청사를 비롯한 중앙 행정 기관과 헌법재판소 등 국가 중요 기관이 있고, 중구 정동에는

각국의 외교 대사관이 밀집해 있다. 또한 여의도에는 국회가, 서초구에는 대법원을 비롯한 법조 단지가 형성되어 있다.

청와대 - 대한민국 대통령의 관저
대한민국 국회 - 대한민국의 입법부
대한민국 대법원 - 대한민국의 최고 법원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 대한민국 헌법에 관한 분쟁을 판정하는 특별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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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
서울의 공업은 1919년에 영등포에 세워진 방직공장을 시초로 한다. 영등포에는 그 외에도 피혁공장과 철도공작창이 지어졌으며,

1940년대 들어서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일본의 군수물자 조달을 목적으로 영등포와 용산을 중심으로 군수 산업이 발달하였다.

8·15 광복과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잠시 침체 상태에 있었으나, 1962년부터 시작된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로 인해 서울의

공업은 급속도로 발달하였다. 1971년 형성된 구로동 수출산업공단은 섬유·전자기계·고무합성수지제품·금속·광학기기류 등의

생산으로 서울 최대의 산업단지가 되었으며, 인근의 영등포 기계공단과 묶여 경인공업지구를 형성하였다.

1990년대 초까지 용산·영등포·천호동·노원구 등에 공업지구가 형성되어 있었으나, 수도권이 팽창하면서 인천·시흥·안산·

부천 등 인근 지역으로 옮겨갔다. 2000년대 들어 첨단산업이 발달하면서 구로동 지역

의 대규모 공단이 디지털산업단지로 탈바꿈하여 현재는 수많은 IT 벤처

기업이 있다

 

 

 상업
서울의 상업은 종로·남대문로·충무로·명동·을지로와 청계천 등의 상가와 남대문시장·동대문시장·중부시장 등의 시장과

백화점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1960년대 들어 대단위 슈퍼마켓과 연쇄점·지하상가가 시내 요소에 설치되어 새로운

상가를 형성하였다. 전문상가로는 전국에 의류를 공급하는 남대문 의류상가와 동대문 평화시장, 가락동 농

수산물도매시장, 노량진수산시장, 용산전자상가, 경동시장 등이 있다.

 

 

교육
서울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를 비롯한 국·공립 대학교와,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 서강대학교, 성균관대학교, 한양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대학교, 경희대학교 등 사립 대학교들이 소재하고 있다. 강남구와 서초구 일부를 가리키는

'서울 강남 8학군'이라는 명칭은 한국의 열성적인 사교육 문화를 대변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대학 41개교, 교육대

학 1개교, 방송통신대 1개교, 산업대 1개교, 전문대 12개교 등이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증가함에 따라 보육 시설이 더 많이 요청되고 있다. 이에 서울시에서는 보육 포털을

운영하여 보육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교통
승용차와 대중교통인 지하철, 버스, 택시가 주된 시내 교통 수단이다. 주요 환승지로는 서울역과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동서울종합버스터미널, 남부터미널 주변, 강남역·잠실역·영등포역·신촌 등이 있다. 2007년

말 기준으로 자동차 등록 대수는 2,933,286대로 수송 분담률은 2006년 기준으로 지하철 34.7%, 버스 27.6%, 택시 6.3%,

그 외 자가용이 26.3%이다. 1899년부터 운행하던 전차가 1968년 없어지면서 서울의 대중 교통 수단은 많이 달라졌다.

1966년부터는 시가지의 대폭적인 재개발로 건물의 고층화와 함께 도로의 입체화가 진전되었다. 대중 교통 수단의

재배치는 서울 도시 구조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쳐왔다. 대표적인 예로 1기 지하철, 특히 당초 계획과는 달리 거대 순환선으로

변경된 2호선이 서울의 공간에 끼친 영향을 들 수 있다.

 

 

도로
경부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가 남쪽으로 이어져 있으며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및 제1·제2경인고속도로는

서쪽에 있는 인천광역시와 연결된다. 시 외곽에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둘러싸고 있다. 도시 내부에는 강변을 따라가는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 내부순환로, 동부간선도로, 서부간선도로, 남부순환로, 북부간선도로 등의 간선도로가 건설되어 있다.

강변북로는 고양시와 파주시, 올림픽대로는 인천광역시와 부천시, 동부간선도로는 성남시와 의정부시, 서부간선도로

는 안양시와 광명시, 북부간선도로는 구리시와 연결된다. 서울시 내의 주요 도로로는 테헤란로, 세종로, 종로, 강남대로,

시흥대로 등이 있다

 

 

 

버스
서울에서 버스가 처음으로 운행을 하기 시작한 때는 1928년으로, '경성 부영버스' 라는 이름으로 10대를 운영했다.

1949년 17개 회사가 서울시로부터 면허를 받고 버스 운영에 뛰어들었다. 이후로 여러 차례의 확장과 개편을 거쳤으며,

2004년 서울특별시 버스 개편으로 버스 준공영제와 환승할인 제도가 도입되었다. 현재 시내버스, 간선버스, 마을버스,

광역버스 등을 포함한 수백개의 버스노선이 시 전체를 거미줄처럼 연결

해주고 있다.

 

 

택시
서울에서 택시는 1912년에 처음 운행을 시작하였고, 1919년 최초의 택시회사가 설립되었으며, 1926년에는 미터기가 도입되었다.

8·15 광복 후에도 발전을 거듭하여 1970년 콜택시가 등장하고, 1988년에는 콜택시 대체용으로 도입된 중형택시,

1992년에는 모범운전수가 운전하고 콜택시를 도입하는 등 서비스 수준을 높인 모범택시가 선을 보였다. 또한 2009년에는

소형택시 부활이 결정된 이후 2011년 12월 부터 소형택시 70여대가 운행되고 있다. 택시는 도로 교통의 발달과 같이

성장하였으며, 원하는 곳에서 타고 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다른 대중교통에 비해서 요금이 너무 비싸다는

지적도 있다. 2012년을 기준으로 서울시 소형택시의 기본요금은 2100원, 중형택시는 2400원, 모범택시는 4500원이다.

 

 

철도
서울에서 다른 도시간을 잇는 철도 교통이 발달되어 있다. 지역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역이 나뉘어 있어, 서울역에서는 경부선,

 용산역에서는 호남선·전라선·장항선, 청량리역에서는 중앙선·태백선·영동선열차가 출발한다. 그 외에도 영등포역 등의

 중간역에서 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인천국제공항역에서는 공항철도를 이용하여 서울역까지 접근할 수 있다.

 

 

도시철도
1968년 서울전차의 퇴역으로 이를 대신할 대중교통수단 건설이 논의되었고, 1974년 서울 지하철 1호선의 개통으로

본격적인 도시 철도 시대를 열었다. 1기 지하철 사업으로 2호선, 3호선과 4호선이 개통되었고, 그다음 2기 지하철 사업으로

5호선, 6호선, 7호선, 8호선이 새로 건설되어 추가되었다. 이후 9호선이 건설되면서, 2011년 현재 코레일 관할 구간을 제외하고

9개 노선이 운행하고 있다. 서울의 도심과 부도심을 이어주며, 특히 서울 지하철 2호선의 개통은 서울의 공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서울 지하철 5호선의 경우에는 최초로 한강 아래로 터널을 뚫어 운행을 시작했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을 포함한

 일부 노선은 코레일의 수도권 전철과 연계 또는 직결 운행하여 서울 주변의 위성도시들을 연결한다. 

 

 
수상교통
거에는 뚝섬과 마포에 항구가 있어 번창하였으나, 육상교통이 발달되면서 자취가 사라졌다. 또한 노량도(서울 시흥)·

양화도(서울 인천)·한남도(서울 용인)·송파도(서울 광주)·광나루(서울 광주) 등의 나루터가 있었으나 한강대교가 가설된

후부터 옛날의 나루터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한강 개발 이후가 된 후 관광용으로, 또한 통근용으

로 수상 교통의 부활이 이루어졌다.한강 유람선한강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986년 10월 26일부터 관광용 한강 유람

선 운행을 시작했다. 여의도와 잠실 등 8개 선착장에서 운행하고 있다.

 

 

수상 택시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07년 10월 11일부터 한강 수상택시 운행을 시작했다. 여의도와 잠실 등 한강변

18개 승강장에서 운행하고 있으며, 도로 교통에 비해 빠른 소요시간과 정시성을 보장하고 있다

. 하지만, 예상수요의 0.1%도 안되는 이용률 때문에 민간사업자의 경영상태가 악화되고 있다.

 

 

항공
일본, 중국의 일부 국제선을 제외하고, 국내선은 주로 김포국제공항을, 국제선은 인천국제공항을 이용한다.

서울 도심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는 약 1시간 정도가 소요되며, 인천국제공항철도 또는 인천국제공항고속도

로를 이용하여 접근할 수 있다.

 

 

문화
서울은 대한민국 문화활동의 중심지가 되고 있으며, 도서관·박물관·신문사·출판사·방송국과 기타 문화시설들이 집중되어 있다.

132개의 국보, 380개의 보물, 61개소의 사적, 11개의 천연기념물, 32개의 무형

문화재, 46개의 중요민속자료 등이 서울에 있다. 또한 경복궁 등의 고궁과 각종 공원 등이 있어 시민들과 외국

관광객들에게 좋은 휴식처와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운동경기장으로는 잠실에 잠실 종합 운동장,

목동에 목동 운동장, 성산동에 서울 월드컵 경기장이 있다.

그외 문화재 도서관 공연시설 방송사 신문사 유적지 고궁등 명소와 공

원 그리고 스포츠 시설등으로 다양한 문화 축제가 서울에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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