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가 신점숙작가
남이섬 가을단풍이 참 이뻐요 본문
15년정도 전에 남이섬을 가보고 이번에 가보았다. 옛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곳도 있지만 모든게 아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어떤 계기가 마련 되지않아사 남이섬은 늘 사진이나 뉴스로만 접했는데. 이번에 유스호텔 정모가 있어서 청평에서 1박을 하고 일행들과 남이섬으로 갔다. 가을의 햇살이 참 이쁘고 포근한 날씨에 가까운곳에서 출발을 해서인지 비교적 일찍 도착을 했다. 하지만 입구에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페리3대가 쉬지않고 남이섬으로 사람을 실어 나르고 육지로 실어 나르고 있었다. 그것도 한 가득 태워서 말이다. 남이섬의 하늘을 찌를듯 치 솟은 나무들 사이로 비켜드는 고운 햇살을 카메라에 담아 보고싶었는데.. 여유롭게 한가롭게 느긋하게 담아 보았다. 렌즈를 등에 메고 있는 베낭에서 교체하기싫어서 망원렌즈로만 담았더니 생각만큼 담아 내지를 못했다. 멋진분들과 함께 했던 남이섬 사진 몇장 올려봅니다. 비나리투어 에서도 남이섬 여행을 보내드리지만 늘 손님만 보내드렸지.. 이제는 나도 함께 가보아야겠다. 가평역에서 전철을 탓는데 안산까지 거의 서서 왔다. 서 있는게 걷는 것 보다 훨씬 힘이든다. 다음부터 국내 근거리 여행시에는 휴대용 의자를 짊어지고 다녀야 겠다.
남이섬 남이섬 (南怡—)은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에 있는 섬이다. 남이 장군의 묘역이 있는 문화유적지이지만 유원지로 개발되었다. 개인 소유의 섬으로 드라마 촬영으로 인해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으며 일본에 이은 동남아 관광객들이 한국 드라마의 영향력으로 많이 찾고 있는 관광명소이다. 유원지였던 시절 쌓였던 쓰레기를 처분하다 못해 쓰레기로 예술 작품을 만들어서 섬을 장식하고 있다. 드라마카페 "연가지가"과 갤러리 "레종", "그때그시절 전시관, 안데르센홀, 유니세프홀, 노래박물관 등의 문화공간이 있다.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배용준과 최지우가 남이섬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과 은행나무길을 걸었다.
태종과 원경왕후의 넷째 딸인 정선공주(貞善公主)의 손자[1]이기도 하다. 할아버지는 태종의 사위인 의산군(宜山君) 남휘(南暉)이고,시호는 충무(忠武)이다. 아버지는 군수 남빈(南份)이며, 어머니는 현감 홍여공(洪汝恭)의 딸이고, 부인은 좌의정 권람(權擥)의 딸이다. 무예에 능하였으며 세조의 총애를 받아 20대의 나이에 병조판서에 이르렀으나 해임당한 것에 불만을 품던 중 그가 지은 시조 한 수를 문제삼은 유자광(柳子光)과 한명회(韓明澮), 신숙주(申叔舟) 등의 공격을 받고 처형되었다.
생애 후일 중종 때의 영의정을 지낸 남곤(南袞)은 그의 일족이다. 세조의 공신 권람의 딸과 결혼하였으나 부인 안동권씨는 요절했고, 권람도 일찍 사망한다. 재혼한 부인과 첩 2명이 더 있었으며, 재취 부인은 후일 그가 처형될 때 함께 처형되고 두 명의 첩은 남이의 옥사 직후 노비로 끌려간다. 1457년(세조 3년) 무과(武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1466년 발영시(拔英試)에 급제하였고, 1467년 경기도 포천(抱川), 영평(永平) 등지의 길목에서 여행객과 상인들을 약탈하는 도적떼를 토벌했다.
이시애의 난과 여진족 토벌 선봉으로 출정하였다. 그뒤 출정 중 그의 훈공이 조정에 알려져 바로 당상관으로 승진하여 행 부호군(行副護軍)을 거쳐 행 호군이 되었다. 난이 평정된 뒤 적개공신(敵愾功臣) 1등관에 책록되고 의산군에 봉군되었다. 이어서 서북변에 출몰한 건주위(建州衛) 여진족을 정벌할 때에도 평안도선위사 윤필상의 지휘하에 우상대장이 되어 선봉으로 적진에 들어가 만포로부터 파저강을 공격하여 여진족의 수괴 이만주 부자를 참살하고 되돌아왔다. 이러한 공로로 2등 군공에 책봉되었다. 그 뒤 공조판서를 거쳐 1468년(세조 14년)에는 오위도총부 도총관을 겸했으며, 그해 27세의 나이로 병조판서가 되었다. 그러나 세조가 죽자 한명회, 신숙주의 노골적인 견제를 받기 시작한다. 그해 남이의 승진과 세력 확장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견제하던 신숙주, 한명회 등이 이시애의 난 평정으로 등장한 신세력을 제거할 때 병조판서에서 해직되어 겸사복장(兼司僕將)으로 전임되었다. 한명회, 신숙주 등이 강희맹(姜希孟), 한계희(韓繼禧) 등의 훈구 대신들의 입을 통해 남이가 병조판서직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고 비판하자, 예종은 그를 병조판서에서 해임하고 겸사복장직에 임명한다.
유자광과의 갈등 그런데 자신가 함께 공을 세운 남이가 세조의 사랑을 더 많이 받는 것을 시기하고 있다가 마침 남이가 병조에서 밀려나자 그를 완전히 제거해버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예종은 정사 처리에도 능하지 않았으며 세조의 신뢰도 두텁지 않았다. 예종은 그때문에 그를 시기하고 질투했다. 예종이 즉위한 지 얼마 안 된 1468년(세조 14년, 예종 원년) 어떤 사람이 그가 공주와 간음하였다고 루머를 날조하여 곤욕을 치루었는데, 그해 숙직을 서면서 혜성이 나타난 것을 보고 “묵은 것을 없애고 새것이 들어설 징조”라고 했다. 이것을 엿들은 유자광은 그가 영의정 강순 등과 모여 역모를 꾸민다고 모함하여 하옥되었다. 이후 그의 존재를 경계하던 신숙주, 한명회 등의 잇단 탄핵 상소로 의금부에 끌려가 고문받은 뒤 죽음을 당하였다.
"시"
그의 시 중에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다 없애리라. 남자 20세에 나라를 평안히 못하면 후에 누가 대장부라 하리요.”라고 읊은 시가 유명하다. 후에 그의 이 시는 봉기나 데모대의 홍보물에 주로 이용되었다.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뒤 반탁시위에 김구(金九)는 친필로 6.23 반탁데모에 장군 남이가 지은 '남아 이십세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한다면/후에 누가 대장부라 이르리'라는 시를 선사하여 격려하였다. 한편 예종조에 역모로 몰린 남이는 장인 권람의 친구들인 대신들에게 구명을 요청했지만 한명회도 신숙주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외면하였다. 오히려 그의 아들들은 누이가 일찍 죽어서 예종 초 남이 집안과 아무런 관련도 교류도 없음을 들어 극적으로 멸문지화를 면하였다. 1468년 10월 27일 군기감 앞 저자거리에서 강순 등과 함께 거열형(車裂刑)을 당하였다. 또한 그를 변호하던 조숙(趙淑) 등도 처형당했고, 그가 역모의 누명을 쓰고 처형되자 그의 모친 역시 연좌되어 상중에 고기를 먹고, 아들인 그와 간통하였다는 죄로 능지처사되었다.
사후 유자광의 모함으로 날조된 옥사라고 규정하고 남이를 젊은 나이에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은 인물로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남이의 옥을 날조 사건으로 기록한 대표적인 책은 연려실기술인데 여기에는 유자광의 계략에 의한 것으로 되어 있다. 중종 때 조광조(趙光祖) 등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점이 감안되어 복권 여론이 조성되었으나 기묘사화로 조광조 등이 숙청되면서 실패로 돌아간다. 그뒤 순조 때인 1818년(순조 18년) 후손 우의정 남공철 등의 상소로 복권되었다. 시호는 충무(忠武)이다(향토문화백과 참조). 묘소는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 남이섬에 있고 1818년(순조 18) 우의정 남공철(南公轍)의 주청으로 강순과 함께 관작이 복구되었다. 창녕의 구봉서원(龜峯書院), 서울 용산의 용문사(龍門祠) 및 서울 성동의 충민사(忠愍祠)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축령산 전설 고창의 경계에 있는 축령산(620.5m)이 있는데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축령산 이름의 유래는 조선 세조 ~ 예종 당시 젊은 나이에 억울한 죽음을 당한 남이(1441년 ~ 1468년) 장군과 관련된 것이다. 축령산에는 남이 장군이 어릴 적 무예를 닦았다는 남이바위가 있고 정상에서 동쪽 방향으로 경기도 가평의 남이섬과 더불어 남이 장군 유래설이 근거가 빈약하지 않다. 유자광의 거짓 고변을 들어 예종이 스물여덟의 남이를 '거열형(車裂刑)'이라는 사지가 잘려나가는 형벌로 참혹하게 죽이자 이 지역 사람들이 그 영혼을 위로하고자 남이와 관련이 있는 이 산을 축령산으로 이름 지었다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남이 장군 유래설이 더 친근감이 간다. 이밖에도 축령산에는 남이 장군이 무예를 닦았다는 남이바위가 있다.
남이 장군 묘소 이름이 유래된 남이장군의 묘소를 찾아 볼 수 있다. 역모를 꾀한다는 유자광의 모함으로 능지처참(거열형) 당한 남이 장군은 이곳 어딘가에 묻혔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전설에 담겨 전해져오는 돌무더기가 있어 이를 흙으로 덮어 봉분을 만들고 치장한 게 현재의 남이장군묘라 하는데 실제 남이 장군이 묻혀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반역를 꾀하였던 무리들을 섬멸했다는 경상북도 영양의 '남이포'와 경기도 용인시 구성지역의 '남씨 가문에 내려오는 아기장군'에 대한 얘기도 남이 장군과 얽혀있다. 이렇듯이 현재 한국에는 남이에 대한 전설이 많다. 그만큼 스물여덟의 꽃다운 나이에 죽은 남이에 대한 안타까움이 설화같은 전설이 되어 전해 내려오는 것이다.
무에서의 남이 남이 장군이 청년 시절에 처녀를 괴롭히는 악한 귀신을 보고 쫓아내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전설에 따라 귀신, 지네 등 다양한 상대를 한 것으로 전한다. 무속에서 남이 장군은 무당이 섬기는 장군신 중 한 분이다.
권람과의 관계 그러나 부인 안동권씨가 일찍 죽고, 장인 권람도 1465년에 일찍 죽었으므로 그를 지원해줄 인물이 없었다. 권람, 태종과는 이중 인척관계로 남이는 태종의 딸 정선공주의 손자이며, 장인 권람의 숙부 권규(權侊)는 태종의 다섯째 딸 경안공주와 결혼하여 권총은 다시 태종의 외손으로, 그에게는 외종이모부가 된다. 김문기와도 사돈간으로 권총의 손녀 권영금은 김문기아들 김현석의 부인이다.
첩 탁문아 그를 집안 노비로 부릴 수 없다 하여 관비로 정속된다. "흥ㅇ야군 산운이 아뢰기를 "전일에 하사받은 난신 남이의 첩 탁문아는 어전에서 정재를 하던 자이므로, 신이 감히 가비로써 부릴 수가 없습니다. 또 이 앞에서 기생 월중매와 초요강 등이 난신의 첩들로서 모두 다 본역에 그대로 정속 되었으니, 청컨데 이를 개정 하소서," 하니 의금부와 장례원에 전지 하기를, "신운에게 하사해 준 기생 탁문아는 그대로 진해 괸비로 정속하라, 하였다.
전해오는 이야기 또한 역모를 꾀한다는 유자광의 모함으로 오 마 분 체 형을 당한 남이 장군이 이곳 어딘가에 묻혔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지만, 남이 장군은 사실 춘천 남이섬에 묻힌 것이 아니라 화성시 비봉면에 묻혀 있다.
남이섬 위치 1940년대 이곳에 청평댐이 건설되면서 주변이 물에 잠기고 봉우리는 섬이 되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에 속해 있고 길은 경기도 가평군으로 통한다. 둘레가 약 6㎞로 작은 섬이지만 1960년대부터 나들이터로 이름을 떨쳤다. 현대에는 경춘선 복선 전철이 개통되면서 가평역에서 남이섬으로 바로 통한다. 한동안 소비행락지로 취급을 받다가 최근 ‘겨울연가’의 무대가 되면서 다시 데이트 여행지로 거듭났다. 원래 주인은 섬 이름이기도 한 조선의 남이(南怡ㆍ1441년 ~ 1468년) 장군이다. 그가 유배를 당해 기거했던 곳이자 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전설에 담겨 전해져오는 돌무더기가 있어 이를 흙으로 덮어 봉분을 만들고 치장한 게 현재의 남이장군묘라 하는데 실제 남이 장군이 묻혀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참고로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에도 남이장군묘(경기도기념물13호)가 있다. 남이섬 관리측은 이곳을 친환경적인 체험 관광 문화 공간으로 되돌아가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현재 남이섬은 현재 친일파 민영휘 의 후손의 소유지였으나, 현재는 남이섬 관리회사의 소유로, 민영휘의 후손이 그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교통 사실은 나미나라 공화국이라는 가상 국가이다.)를 거친 뒤 선박을 이용하여 남이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선박은 카페리가 아닌 여객용 페리이며, 일반 차량은 남이섬에 출입이 금지된다. 유원지로 개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강의 서쪽(가평군 방면), 동쪽(춘천시 방면)으로 모두 다리가 놓여있지 않다. 가평군 달전리의 선착장에서 연결되며, 남이섬 안의 선착장에서 남이섬 중심지를 오가는 궤간 610mm의 유니세프 나눔열차가 운행된다. 또한 남이섬과 자라섬 방향으로 운행하는 짚와이어로도 들어갈수 있는데, 요금은 38000원, 경기도민은 35000원으로, 남이섬 입장료가 포함된 가격이다. 짚와이어는 가평군, 경기관광공사, 남이섬이 출자한 법인에서 운영된다. 그리고 남이섬 선착장에서 남이섬까지 5~6분만에 갈 수 있다. 또한 경춘선 가평역이 인접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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