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가 신점숙작가
과학에서의 진실 혹은 거짓 본문
과학에서의 진실 혹은 거짓
사람은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얼마 전 인간의 기대수명에 대해 과학계의 뜨거운 논쟁이 있었다. 논쟁의 대표적 주인공들은 미국 텍사스 대학의 오스태드(Austad) 교수와 일리노이 대학의 올샨스키(Olshasnky) 교수이다.
오스태드 교수는 향후 20∼30년 안에 인간수명을 30% 정도 늘릴 수 있는 약이 개발될 것으로 보고, 서기 2150년 인류 최초로 150세에 달하는 인간이 등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스태드 교수는 텍사스대학의 노화연구재단에서 원숭이의 실험을 연장시키는 실험을 해 왔으며, 진화론과 노화연구를 접목시키고 있는 석학으로 존경받는 사람이다.
이에 대해 올샨스키 교수는 의학이 빠르게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노화를 막거나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 그러한 생명연장은 SF영화에서는 모르지만 현실 과학의 세계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설사 유사한 약물이 개발된다고 하더라도 2∼3년 정도 연장하는 데 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두 학자는 이러한 논쟁을 하며 150년 후 5억 달러(약 6천억 원)의 내기를 걸었다고 한다. 과학의 역사상 최대의 판돈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는 각자 150달러씩 내서 150년간 주식시장에 묻어두기로 하고, 2150년에 승자(후손 또는 연구소)가 갖는 것으로 정한 것이다. 300달러를 20세기의 주가상승에 견주에 산출해 보면 150년 후 5억 달러가 된다는 논리이다.
사실, 인간의 수명이 얼마나 길어질 수 있는가는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한다면 150년까지 가지 않아도 판가름 날 수 있을 것이다. 과학계에서 이 정도의 논쟁은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판돈을 걸고 내기를 하는 모습은 오히려 재미있기까지 하다. 나중에 어느 한 사람의 주장이 진실 또는 거짓으로 판명되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진실을 왜곡하여 거짓을 주장?공표하거나, 자신의 연구성과로 활용할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진실에 대한 왜곡은 때로 사회적 혼란은 물론, 인류역사의 진보를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가끔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몇 년 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결과가 그러한 예이다. 그가 고의적으로 연구결과를 왜곡했든, 의도하지 않았지만 연구과정에서 착오가 발생했든 간에 그의 연구결과는 상당부분이 거짓으로 밝혀진 바 있다.
그 결과 우리사회는 엄청난 혼란을 겪게 되었으며, 과학자 또는 과학 자체에 대한 불신의 장벽이 만들어 졌다. 어쩌면 그러한 불신보다 우리 자존심의 상처 또는 우리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나 미래에 대한 비전의 소멸 등이 더 큰 괴로움이었을지도 모른다.
최근 복지부에서 임상을 전제로 내년 6월까지 한시적으로 허용한 건국대병원 송명근 교수의 카바수술(CARVAR surgery)은 아직도 논란의 한가운데 있다. 의료계 내에서 논란이 확대되자 일부 언론을 통해 일반인들에게까지 관심의 대상이 된 이 카바수술은 송명근 교수가 최초로 개발은 독자적 심장수술법이다.
기존에는 손상된 심장판막을 인공판막으로 교체하여 치료하는 방식이었지만, 카바수술은 판막과 비슷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특수하게 제작된 링으로 판막 주위를 고정시켜서 판막의 기능을 복원한다는 것이다.
대한심장학회나 대한흉부외과학회 등은 수술의 안전성 문제를 들며 조속히 수술을 중단할 것을 주장하고 있으며, 송명근 교수 측은 안전성 논란을 일축하며 새로운 의료기술로 인정받아야 함을 주장하고, 의료기기 수입대체는 물론 우리나라 의료기술의 해외진출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필자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진실에 대한 왜곡이나 편협한 주장 또는 소모적인 논쟁은 지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아울러 송명근 교수의 의료기술(기기)이 보다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그 가치와 안정성이 판명되기를 바란다.
사실,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볼 때, 과학계에서 진실 혹은 거짓에 대한 논쟁은 항상 있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학창시절을 거치면서 많은 과학적 이론과 논리들을 배워 왔으며, 그러한 내용에 대해 거의 의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관찰과 실험을 통해 입증이 되거나, 과학계에서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학적 사실과 이론이 우리에게 보편·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그 과정에서 수많은 논쟁과 갈등, 대립과 반목이 있었는지는 흔히 간과되고 있다.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에서도 대부분의 경우 하나의 이론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어떤 현상에 대한 가설을 설정하고 이를 입증함으로써 객관적 체계를 갖추게 된다. 이러한 과학적 체계가 재현성을 가지고 객관적으로 검증받아 관련 학계에서 인정받을 때 하나의 공식적 과학 이론으로 대접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고 많은 경우 반론에 부딪치게 되는데, 그 반론이 때로는 감정적이거나 정치적, 종교적, 금전적 이유 등으로 왜곡되거나 부정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로인해 과학계에 새로운 개념이 도입될 때 종종 의도적으로 짓밟히거나 당장은 빛을 보지 못하고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흔히 잘 알고 있듯이,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사실을 갈릴레이가 [천문대화]라는 책의 출간을 통해 조심스럽게 주장했을 때에도, 그는 교황 우르비누스 8세의 종교적 편견과 개인적 야욕에 부딪쳐 좌절을 맞보게 된다.
진실 혹은 거짓에 대한 과학적 논쟁의 사례는 많다. 토머스 홉스와 영국의 수학자 존 월리스가 약 25년간 편가름을 해 가며 격렬한 논쟁을 벌인 대수학적 방법론의 문제, 미적분에 대한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우선권에 대한 논쟁, 자연발생설에 대한 니덤과 볼테르의 논쟁, 지구의 나이에 대한 켈빈과 지질학자·생물학자 간의 논쟁,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에 대한 논쟁 등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 밖에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대한 논쟁 등 수많은 과학이론이 논쟁을 거치면서 발전해 왔다.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과학적 진실이지만, 그 이면에는 격론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언젠가는 터무니없는 거짓으로 판명될지도 모른다.
특히 다윈의 ‘진화론’은 다양한 증명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창조론’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음을 볼 수 있으며, 공룡시대의 종말 이유, 원유(oil)의 생성원리, 지구온난화 원인에 대한 논쟁 등 아직도 증명해야할 가설들이 많이 남아있다.
끊임없는 탐색과 실험, 객관적 사실과 현상에 대한 분석과 이를 통한 새로운 가설의 설정과 이론의 도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말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민족적·종교적 편견, 욕심과 질투심, 권위의식, 사사로운 감정이나 근거 없는 비방 등이다. 과학에서의 진실 혹은 거짓은 이러한 부정적인 요소들을 제거해 나가는 과정에서 드러날 것이다.
김재덕/기업가치평가사
(재)경기테크노파크 기술개발지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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