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가 신점숙작가
전구 만리장성 본문
중국여행에서 우선순위가 북경여행이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자금성과 만리장성을 여행하고 나면 중국을 다 보고온것 같은 느낌이다. 자금성도 안으로 들어가서 관람을 하기도 하지만 외부에서 바라만 보고 오는 경우도 많다. 만리장성관광 역시 삭도를 타고 올라가서 만리장성을 돌아보는 경우가 대 다수이다.
산행을 좋아하고 트래킹을 즐기는 매니아들은 이것 보다는 다름 방법을 선택하는데..아직은 만리장성의 다양한 코스를 알지 못하고 있다. 산행을 즐기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어 올려본다. 늘 다니던 코스가 아닌 다른 만리장성..? 베이징에서 버스로 2시간 정도 가서 장성을 오르기 시작한다. 트래킹코스를 개발하기 위해서 팸투어를 다녀왔다. 당시에 담은 사진 몇장과 함께 만리 장성에 대해서 알아 보도록 해보자.
베이징 주변의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어 만리장성으로 접근 할 수가 있는데 그중에 베이징 동쪽에 자리 하고 있는 전구 만리장성을 소개 하고자 한다. 활시위를 힘껏 당겼을 때 기러기가 나는 모양의 활 같다고 해서 전구 만리장성이라고 한다. 개 보수를 하지 않아서 축조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곳 중의 하니이기도 하다.
관광객들보다는 트래킹을 즐기는 유럽의 젊은이들에게 알려져 있어 간간이 오고가는 모습을 볼 수있다. 장성이 무너져 내린곳도 있고 가파르게 올라가야 하는 곳도 있고.장성을 시간에 쫓기면서 관광을 하는것 하고는 사뭇 다르다. 길이 없는곳도 있어서 약간은 원시림에 온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 전구 만리장성의 하루 트래킹코스의 시간은 4시간정도에서 하산을 해야 한다. 만리장성을 완주 할려면 적게는 1개월에서 많게는 6개월을 해야 할것같다.
만리장성(중국어 정체: 萬里長城, 간체: 万里长城, 병음: Wànlĭ Chángchéng 완리창청)은 흉노족 등의 북방 민족을 막기 위해 기원전 208년 전국 시대 중 제나라 시대 때 처음 착공된 후 중국의 고대 진나라(시황제)때까지 세워져 현재까지 존재하는 오래된 성곽으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중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물이어서 중국 스포츠 국가대표팀의 별칭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개요 〈산하이관〉(山海關)에서부터 간쑤 성(甘肅省) 〈자위관〉에 이르는 총 길이 6,351km에 달한다. 그 거대함 때문에 "달에서도 보이는 유일한 인공 건축물"이라고 거론되었으나 2004년 12월 8일 중국과학원은 사람의 눈으로는 우주 공간에서 만리장성을 관측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역사 북방의 방어를 위해 장성을 쌓았으며, 한, 제 등의 국가는 다른 국가를 막기 위해 국경에 장성을 쌓았다. 기원전 222년에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한 후 중국 안에 있던 장성은 파괴하고 북쪽에 만들어졌던 여러 성들을
서로 연결시켜 장성을 쌓았는데, 기록에 따르면 몽염 장군에게 장성을 쌓도록 명하여 기원전 214년 경에 완성하였으며 동쪽으로는 요동(현재의 랴오닝 성)에 이르렀고 서쪽은 임조(현재의 간쑤 성 민 현)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후 한나라의 무제는 흉노를 몰아내고 영토를 확장하면서 장성을 서쪽의 옥문관까지 확장시켰다. 후한 시기에 는 흉노의 세력이 크게 약화되어 이후 수백년 동안 장성의 개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시기의 장성은 현존하는 장성과는 위치도 전혀 다르고 쌓는 방법도 달랐다 . 현재의 장성보다 더 북쪽에 위치하며, 대부분 흙으로 쌓은 것이기에 현재의 만리장성과 달리 높이도 낮았다. 이 당시의 만리장성은 긴 장벽 형태의 성벽뿐 아니라, 국경 초소나 보루, 요새 등으로만 이루어진 구간도 다수 존재했으 며, 성벽이 끊긴 곳도 있었다. 북방민족과의 경계가 아닌 요동 남부 등에 설치된 만리장성은 본격적인 성벽이라기 보다는 전진기지 성격의 요새가 대부분이다 이것이 현재 남아 있는 만리장성의 기초가 되었다. 수나라는 통일 이후에 만리장성을 보수하고 오르도스 지방 남쪽에 새로운 장성을 쌓았다. 그러나 당대에는 북방을 경영하고 북방의 이민족을 지배하면서 만리장성은 유명무실해졌다. 이후에는 반대로 이민족인 거란 , 여진, 몽골 등이 지속적으로 공격해와 장성 너머에 영토를 가지게 되면서 만리장성은 무력화되고 방치되었다. 그러나 거란의 요나 여진의 금은 다른 북 방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대싱안링 산맥 등지에 새롭게 장성을 수축하기도 하였다.
원을 몰아내고 명이 세워진 뒤 원의 재침입을 막기 위해 장성을 강화하고 신축하여 지금 형태의 장성이 되었다. 영락제 때부터 건설을 시작한 만리장성은 북위 및 북제의 장성이 기초가 되었으며, 오르도스 남쪽 수나라의 장성도 활 용되었다. 주로 북경 인근의 동단을 중심으로 축성된 명나라의 만리장성은 가정제 연간에 몽골의 침입이 가속화되면서
더욱 견고하게 건설되었으며, 서쪽의 장성들도 지속적으로 개축되어 16세기 말에 비로소 지금의 장성이 모두 완 성되었다. 이때의 장성 역시 성벽뿐 아니라, 목책이나 거점 형식의 요새도 포함하고 있는 개념으로, 산하이관 동쪽 랴오닝 성 지역의 장성은 대부분이 목책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현재는 유적이 남아 있지 않다.
연혁 입을 대비해 서쪽으로 더 연장시킴한대에 무제가 우웨이와 주취안에 장성을 연장시켜 쌓음
몽골계 민족은 명대에도 장성을 넘어 침입하기를 되풀이하였고, 명나라 말에 만주족(여진)이 발흥해 후금을 건국하면서, 명나라와 사이에 장성의 동단을 둘러싸고 사투가 반복되었다. 후금은 명나라와 유리한 싸움을 진행하면서도 명장 원숭환에 방해로 장성의 동단의 산해관을 넘을 수 없었다. 그러나 원숭환은 후금의 계략으로 명의 숭정제에게 주살 당했다. 그 후 명나라는 이자성의 반란으로 멸망되고 후금으로 개명했던 청나라는 명나라 신하였던 오삼계의 안내로 산해관을 넘어 청나라의 중국 지배가 시작되었다.
현황 지역 주민이 집의 재료나 관광객에 판매하기 위해 장성의 벽돌을 갖고 돌아갔기에 파괴가 지속되었다. 또한 댐 공사로 인해 일부가 물에 잠기기도 하였다. 장성 주변의 감숙성과 섬서성(陝西省)은 중국에서도 가난한 지역 중 하나로 당국은 대책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06년 4월에 열린 중국의 학술단체 중국장성학회의 조사에 의하면 "만리장성이 안전하게 보전되어 있는 지역은 전체의 20% 이하이고, 일부 현재 존재하는 지역도 30%이고, 남은 50% 이상은 모습이 사라졌다"라고 보고되었다.
논란 둥 시의 ‘호산산성’이 고구려의 박작성이라는 사실에 언론이 주목하여 논란이 되었다. 2004년부터 고구려의 박작성을 대대적으로 개축하여 만리장성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2012년에는 중국의 역대 왕조들이 건설한 장성 유적을 모두 조사하여 그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한국의 언론에서는 이를 기존의 만리장성을 연장한 것이라 왜곡하여 발표, 대중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중국의 조사는 만리장성으로 대표되는 진나라 및 한나라, 명나라의 장성 유적뿐만 아니라 그외 다른 역대 왕조에서 건설된 다양한 장성을 조사하여 그것을 모두 합산하여 만리장성의 길이가 연장되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국에서는 언론의 왜곡된 발표로 인해 논란이 되고 있으나, 동북아역사재단은 공식 검토 의견을 통해 이는 잘못된 것이며, 중국의 정치적 의도 및 고구 려, 발해와의 연관성은 확인할 필요가 있으나 확실한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중국의 발표를 비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주요장성 노룡두 장성(老龍頭長城) / 산해관(山海關)
베이징 주변사마대 장성(司馬台長城)
베이징 서쪽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은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남녀가 깊은 사랑의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뜻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본래의 뜻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의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기 위해 기술자와 인부들을 모아 대역사를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안부 정도는 인편을 통해서 알 수 있었지만 부역장에 한 번 들어가면 공사가 끝나기 전에는 나올 수 없기 때문에 남편을 부역장에 보낸 여인이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 외딴집에 어느 날 석양 무렵에 지나가던 나그네가 찾아 들었다. 부역을 나간 남편의 나이쯤 되는 사내가 싸릿문을 열고들어서며 '갈 길은 먼데 날은 저물고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바느질을 하고 있는 여인에게 사내가 말을 걸었다. '보아하니 이 외딴집에 혼자 살고 있는 듯한데 무슨 사연이 있습니까?' 여인은 숨길 것도 없어서 그 간의 사정을 말해 주었다. 밤이 깊어가자 사내는 여인이 덮고 있는 이불 속으로 가까이 다가오면서 노골적인 수작을 걸기 시작했고 '부인, 이렇게 과부처럼 살다가 늙는다면 인생이 너무 허무하지 않겠습니까? 돌아올 수도 없는 남편을 생각해서 정조를 지킨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내가 평생을 책임질 테니 우리 함께 멀리 도망가서 행복하게 삽시다.' 그러면서 사내는 더욱 저돌적으로 달려들었고
여인의 말에 귀가 번쩍 뜨인 사내는 어떤 부탁이라도 다 들어줄테니 어서 말하라며 재촉했다. 제가 새로 지은 남편의 옷을 한 벌 싸 드릴테니 날이 밝는 대로 제 남편을 찾아가서 갈아입을 수 있도록 전해주시고 입히고 나면 당신을 따라 나선다고 해도 마음이 가벼울 것같습니다. 기꺼이 몸을 허락하겠습니다.
육체적 사랑을 마음껏 나눈 후, 깊은 잠에 골아 떨어졌다. 아침이 되어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사내는 단잠에서 깨었는데 아침 햇살을 받아 얼굴이 빛나도록 예쁜 젊은 여인이 살포시 미소를 머금고 자기를 내려다 보는데 잠결에 보아도 양귀비보다 더 이쁘게 보였다. 이런 미인과 평생을 같이 살 수 있게 되었다는 벅찬 황홀감에 간밤의 피로도 잊고 벌떡 일어나서
젊은 남자는 잠시도 여인과 떨어지기 싫었지만 하루라도 빨리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와서
길을 떠난지 며칠 후 드디어 부역장에 도착한 사내는 감독하는 관리를 찾아서 면회를 신청했다.
그간의 사정 이야기를 하자 '부역자에게 옷을 갈아 입히려면 공사장 밖으로 나와야 하며
이윽고 여인의 남편을 만난 사내는 옷 보따리를 건네주고는 옷을 갈아 입을 동안 내가 공사장에 들어가 있을테니
남편이 옷을 갈아 입으려고 보자기를 펼치자 옷 속에서 한장의 편지가 떨어졌다. '당신의 아내 려원 이옵니다.
자신을 기약 없는 부역에서 빼내주기 위해 다른 남자와 하룻밤을 지냈다니... 그 일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평생 오손도손 사는 것이 낫지 여인의 남편을 대신해 만리장성 공사장에 들어간 사내는 평생동안 부역장에서 나오지 못할 지도 모르는 운명.. 이처럼 다른 사람이 내 대신 만리장성을 쌓아 준다면 그나마 다행한 일이겠지만 어리석은 그 사내처럼 잠시 욕망에 눈이 어두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의 만리장성을 쌓아주며 http://cafe.daum.net/sjs2030 - 여행안내, 비나리투어,모두투어안산중앙점,국내여행,해외여행,항공권,맞춤여행,단체여행,패키지여행, 허니문,태항산트래킹,특가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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