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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가 신점숙작가

나스까 지상 최대의 신비로운 문양 본문

▷♣[희정의여행이야기]/남미 * 아프리카

나스까 지상 최대의 신비로운 문양

신점숙작가 2014. 9. 25. 00:52

나스까-나스까라인-꾸스꼬행/장거리 이동버스(약 14시간 소요)

장거리 이층 버스는 1층에 11개 2층에 50개의 좌석을 갖추고 앞에 모니터가 설치되어있다. 화장실과 간단하게 차도 마실 수 있고. 두명의 운전자가 교대로 운전을 한다. 엄청난 위용의 안데스 바위산을 휘돌아 치며 끝없이 산을 넘고 달리는 이 길은 판타스틱하다.


지평선 들판 아래로 판아메리칸 하이웨이가 지나가고있다.이 곳을 지나는 판아메리칸 하이웨이가 하나의 검은 색 실처럼 보인다. 그 곳을  달리는 자동차는 장난감 같이 보인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나스까 평원은 끝이 없을 정도의 광대한 넓이를 보여준다..

나스까 주변 오아시스에는 약 25,000여명이 거주한

나스까 문명은 AD 400~650년에 나스까족에 의해 발달하였다고 한다.

당시 사막의 오아시스에 거주한 이들에게 물은 생명의 존재에 가장 중요한 근원이었다. 이들은 물을 확보하기 위해 '나선형 지하 우물(이를 '푸키오(Pukio)'라고 함)'까지 만들어서 식수를 얻고 농경지에 물을 공급했다고 한다.나스까 지상화에 가까운 곳의 '카우아키'에는 고대 나스까인들의 피라미드와 계단식 농경지(테라스), 유골 집단 등이 발견되는데, 이 둘의 관계는 모두 종교적 의식이 거행된 제단이라는 것이다. 산지 사면에 위치한 '카우아키'가 닫힌 공간이라면, 사막 평원에 발견된 '나스카 문양'은 열린 공간으로, 바로 가뭄 지역에서 절실한 물과 생명을 기원하는 종교 의식이 거행된 제단이라는 설을 제시하고 있다. 나스까 일대에 번창했던 나스까 문명도 AD700년경 가까운 산에서 내려온 '왈리족'에게 허무하게 망했다고 한다.


이 지상화가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1932년 페루의 리마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간의 항공 교통이 개설됨으로써 이 곳을 운항하는 조종사들에게 의해 본격적으로 인식되어졌다는 것이다.그 이전 1927년경 페루의 한 고고학자가 나스카 언덕에서 거대한 문양들을 보고 관찰한 후 학계에 보고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 후 1940년대 미국의 고고학자 '폴 코속(Paul Kosok)'이 '중남미 농업 관개 시설 연구'차 나스카의 문양들을 연구하게 되었는데, 여기에 독일 여성인 '마리아 라이헤(Maria Reiche 1903~1998)'여사가 합류하게 되고, 그녀가 1949년 '사막의 신비(Mistery of the Deserts)'라는 책을 출간함으로써 나스카라인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또한 그녀는 이곳을 통과하는 판 아메리칸 하이웨이 건설을 누구보다도 반대한 걸로 유명하다. 후에 페루 정부는 나스까 문양과 나스까 고대 문명 연구에 심혈을 기울인 그녀의 업적을 높이사서 그녀가 연구한 집을 박물관으로 개조하였고, 나스까의 공항 이름도 '마리아 라이헤' 공항으로 명명하였다고 한다.

 

나스까족들은 자갈로 형성된 사막에 문양을 만들 때, 막대기에 끈을 매달아 그것을 기준으로 사막에 널려있는 조립 물질(자갈)을 걷어내고, 폭 15~20cm 정도 넓이의 작은 고랑을 파서 문양을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문양이 강수량이 적은 건조 기후 덕분에 수백년간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편, 엘니뇨 현상에 의해 이 지역의 강수량이 증가할 시기에 일부 나스까 문양이 훼손된 것들도 있다고 한다. 전망대 아래 형성된 2개의 나스까 라인은 '나무(Abrol, Tree, 길이 70m) 형상과 두 팔 벌린 '손(Manos, Hands, 길이 45m)'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망대 가까운 곳에 있는 '마리아 라이헤(Maria Reiche,  이는 독일어와 스페인어의 독음 차이에서 비롯된다) 박물관'이 있다. 거의 반평생을 이곳 나스까 평원의 연구에 헌신하신 독일 여성이다.이곳에 아담한 집을 집고 열악한 사막에서 나스까 문양과 나스까 문명, 고대 나스까카 족들의 생활상을  연구하여 현재 사람들이 이곳을  이해하는데 밑거름을 제공해 주고 있다. 이 곳에서도 고대 인류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미라, 도자기(토기), 각 종 생활 용품 등...
나스까 족들은 죽은 사람을 매장할 때 천으로 온몸을 감싸고 그가 생전에 사용한 식기와 식량을 함께 묻어주는 풍습을 가지고 있다. 미라는 건조 기후에서 그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한 것 같다. 당시 몸을 감쌌던 천과 머리카락, 심지어 팔뚝에 새겨진 문신까지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경비행기 관광을 통해 얻은 소득은 신비스러운 나스카 문양 이외에도 악지(badland), 도상 구릉, 와디, 페디먼트넓은 사막 평원(페디먼트)은 물이 흘러간 흔적이 뚜렷하다. 곳곳에 사막의 돌발성 호우로 인한 망류 하도의 흔적을 새겨놓았다, 오아시스 , 소규모 선상지(충적추)의 모습 등, 비행기 탑승 전에 나눠준 나스카 문양(나스카 지상화)들을 살펴보았다. 비행기는 나스까 문양이 나타나는 곳을 중심으로 좌로 1회, 우로 1회 각각 한 번씩 선회함으로써 좌우에 앉은 승객들에이 공평하게 관찰할 기회를 제공해준다.

비행기가 이륙 후 고도는 지상에서 102~480m 사이의 높이에서 만나는 문양은 고래→우주인→원숭이→개→벌새→거미→독수리→두루미(학)→펠리컨→나무→손(hands)→앵무새 순서들이고,  곳곳에 직선, 삼각형, 사다리꼴 모형들이 그려져 있었다.

동식물 문양들은 작게는 30m에서 크게는 300m 이상까지 다양한 크기로 그려져 있고, 기하학적인 무늬들은 그 길이만도 수km나 된다. 그리고 비행 시간은 약 40분 가량이고, 문양을 통과할 때는 좌로 1회, 우로 1회씩 선회한다고 설명해준다.

그림을 제대로 보기 위해 비행기를 좌우로 45도로 기울이는 비행을 40분 정도 반복한다.

 

나스까 라인! 기원전 후로 과학적 추정치가 약 1000년 정도 차이가 나서 무엇을 믿어야 할 지 알 수 없지만, 대충 따져도 만들어진지 2000년 전후는 되는 셈이니 신비한 것만은 사실이다. 아무리 비가 오지 않는 사막기후라도 그 정도 세월을 견뎌냈는데, 누가 무엇 때문에 이런 작업을 했는지 지금도 밝혀내지를 못했으니 그 모호한 신비감으로 가치를 누리고 있는것

나스까 지방의 황무지는 검은 황무지 아래에 흰 모래바닥이 있다.그래서 라인이 잘 드러난다.

경비행기를 타지 않을 경우  수수께끼의 지상 그림의 나스까 라인을 보기위해 일인당 2솔 약 800원을 내고 올라가는 철탑에는 10명이상은 동시에 올라갈 수 없다. 지상 최대의 수수께끼 문양을 보기 위해 나스까를 다녀온 사람들의 여행후기에 경비행기의 심한 로울링으로 속이 뒤집어 진다는 정보를 검색한 사람들은 나스까에 가서도 경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철탑에서만 바라보고 온다.

인터넷의 여행지 후기 정보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갑자기 돌풍이 분다거나 일기가 좋지 않을 때는 경비행기가 흔들릴 수도 있다. 큰 항공기도 기류가 심한 곳에서는 많이 흔들려 약간은 불안을 느낄 때 도 있다. 나스까 여행시 경비행기로 끝도 없이 광활한 나스까의 신비로운 문양을 반드시 보고 오라고  권한다. 철탑에서는 엄청난 위용의 문양과 기후에의해 만들어진 신비로운 문양들을 볼 수가 없다. 한국에서 남미 나스까 까지는 완전이 반대에 있다. 여행은 약간의 모험을 하는 것이 멋진 풍광을 제대로 즐길 수있다.70살이 넘은 노인들도 하하 호호 하면서 보고 오는 안전한 경비행기이다. 지나치게 부정적인 정보로 인해 정작 관찰 해야 할 것을 놓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http://cafe.daum.net/sjs2030/MFik/14   -  여행 부와 자유의 상징